건강한 설
(15) 나이듦의 절차:한살 더 먹기의 의미
새해가 돌아오면 반복되는 나이듦은
나혼자만의 일 아닌 공동체의 축제
그 과정을 함께한 부모에 감사하며
더나은 내일을 기약하는 명절 되길…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온다. 가는 해의 마지막 날 섣달 그믐과 새해의 첫날 설날은 단순한 하루의 변화가 아니다. 일년 한 해의 변화를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는 이날을 계기로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절차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섣달 그믐날에는 한 해의 묵은 때를 씻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모두 목욕을 했다.
나도 어린시절 집안에 목욕탕이 없을 때 으레 동네 목욕탕을 찾아야 했다. 이미 목욕탕은 동네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북적북적거려서 탕 귀퉁이에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목욕재계 후에는 부모님과 이웃분들에게 묵은 세배를 드리러 다녔다. 한 해를 보내면서 건강하셨음을 축하하고 그동안 잘 돌보아주셨음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다녔다. 다음날 설날은 더욱 특별했다. 어린시절에는 색동옷을, 철이든 이후로는 새 옷을 장만해서 입었고 비록 고무신이었지만 새 신발을 신는 날이기도 했다.
아침에는 가족들이 모여 조상님들에게 차례를 지냈고 이어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돌아가며 새 세배를 드렸다. 만수무강을 빌고 가족번창과 학업증진을 기원하는 덕담들이 오고가곤했다. 이어서 친척분들 이웃어르신들을 찾아 뵈면서 종일 세배를 드리고 다녔다. 세배를 받으면 어른들은 세뱃돈이나 맛있는 과자나 과일을 듬뿍 주었다. 설날 하루를 지나고 나면 호주머니에 세뱃돈과 선물이 가득하여 어린 마음을 풍요롭게 해 그 시절에는 설날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고향을 떠난 이후로도 설날만은 반드시 귀성해야만 했다. 조상님에게 차례를 모신다는 일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의무였다. 내게도 1986년 설날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섣달 그믐날 아침 7시에 반포아파트를 출발해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는데 오후 2시에야 만남의광장에 이르렀다. 저녁 8시에 옥산휴게소를 거쳐 다음날 새벽 4시에 익산에 도착했다.
설날 아침 일찍 차례를 모시기에 부모님께 전화드려 기다려주라고 부탁하고 광주집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였다. 귀향길이 23시간이나 걸린 대역사였다. 당시 2000만명이 움직였다고 보도가 나왔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설날을 지키고 차례를 모실 수 있어서 천만다행으로 생각했을 뿐, 고향을 찾기 위한 고생은 고생일 수가 없는 당연한 과정으로 여겼다.
이렇게 우리는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힘들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 살을 더 먹었다. 그만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온 가족과 온 지역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굉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근자에 정부에서 우리 나이를 만(滿)나이로 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물론 연령제도의 혼선이 빚는 행정적 문제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례로 보면 백세인 조사를 할 때 연령 확인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국제학계에서는 오직 만나이 백살인 분을 백세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대상자로 지목해 현장에서 만난 우리나라 백세인들 중 연령 과장도 많았지만 상당수는 만나이 상의 차이 때문에 아직 한 두살 더 기다려야 하는 젊은이로 밝혀지곤 했다.
우리사회는 전통적으로 태어나면 바로 한 살이다. 우리에게 영(零, zero)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를 넘기면 바로 한 살을 더 먹게 되어 있다. 그런데 만나이라는 것은 서양식으로 생일을 지나야만 한 살 더 먹은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 연령제도가 더욱 복잡한 이유는 양력과 음력을 혼용하다 보니 양력설과 음력설 사이에 차이가 나서 만나이와 비교하면 한 살 내지 두 살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항간에는 나이를 만으로 결정한 정부 시책 덕분에 국민들이 한 살 더 젊어지게 된다는 재담이 떠돌기도 한다. 행정적으로도 그러하지만 실질적으로도 생일 중심의 나이와 설날 중심의 나이는 그 의미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각 개인이 한 살을 더 먹는 생일은 개인을 축하하는 날이고 당사자에게 새로운 날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설날에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나이듦의 과정을 통하여 조상에게 부모에게 이웃에게 친척에게 감사를 드리며 축하를 받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함께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공동체로서의 운명의 날이기 때문이다.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면서 새로운 날을 기대하는 약속을 하는 거룩한 날이 바로 설날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늙음을 수용할 때가 되면 한 살 더 먹는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새롭게 깨닫게 된다. 스웨덴 사회학자 라스 톤스탐은 노년초월(Gerotranscendence)이라는 개념을 주창하면서 80세 이상 초고령 노인의 긍정적 의미를 새롭게 제안했다. 초고령인들은 조상들과 친밀감을 느끼고, 공간 시간 생명의 의미를 새롭게 인지하고 우주적 공감을 가지며 불필요한 일들을 배제하고, 물질적 욕심을 버리고 고독을 즐기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아흔이 넘고 백살이 넘은 분들을 만나 그 분들의 나이듦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면 달관(達觀)이 무엇인가 깨닫게 된다. 세상풍파를 이겨내고 간난신고를 겪어낸 백세인에게서는 아집(我執)을 볼 수 없다.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평안(平安)을 기원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아무런 욕심없이 빈손으로 하늘에 귀의(歸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초고령인의 나이듦에 대한 태도는 자기보호적 개념을 벗어나 보다 이타적이고 자연순응적인 모습이었다.
전통사회에서는 한 살 더 먹는 설날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고 설날이라는 시점을 조상과 연계하고 가족과 이웃이 모두 강한 유대를 맺을 수 있는 전기로 삼았으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믿어왔다. 단순하게 개인의 나이가 한 살 더 늘어나는 생일과는 차원이 다르게 가족 및 지역사회 공동체 모두가 함께 나이가 들며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는 설날의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한 해를 넘어간다.
박상철 전남대 의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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