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법' 시행 1년
전문가 부족하고 비용부담 늘어
10곳중 8곳은 "대응여력 없다"
고령 직원 많을수록 위험 노출
"영세 사업장 지원 늘려야" 지적
산업현장 안전망 강화는 긍정적
#. 인천서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주물업체 대표는 매일 출근한 뒤 가장 먼저 공장에 있는 생산직 근로자 20여명의 얼굴을 살핀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혹여 아픈 곳이 있는지 파악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뒤 익숙해진 습관이다. 주물업체 대표는 "생산직을 포함해 30여명 임직원 모두 이름과 나이, 가족사항을 알 정도로 친하다"며 "어느 사업자가 직원이 다치길 바라겠는가.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중대재해법 규정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볼멘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이후 안전조치를 한층 강화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과도한 처벌규정으로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됐다고 주장한다.
25일 중소기업중앙회가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함께 전국 1035곳(중소기업 947곳, 대기업 88곳)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한 기업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77%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응여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불과 11.5%만 '대응여력이 충분하다'고 했다. 대응여력이 부족한 이유로는 '전문인력 부족'(47.6%)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법률 자체의 불명확성(25.2%) △과도한 비용 부담(24.9%) 등의 순이었다. 특히 중소기업 65.6%는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사항을 '잘 모르고 있다'고 응답했다.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4.4%였다.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 대다수(80.3%)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선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10.5%에 불과했다. 개선방법으로는 △법률 폐지 및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일원화(42.2%) △법률 명확화(33.9%) △처벌 수준 완화(20.4%) 등 응답이 있었다.
실제로 중소기업 현장에선 과도한 중대재해처벌법 처벌로 인해 경영활동이 위축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천에 본사를 둔 부품업체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모든 계단에 난간을 설치하고 지게차 전후방에 센서를 설치하는 등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다양한 안전조치를 시행한다"며 "하지만 언제 어디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직원이 공구를 다루다 손을 조금 찧는 '아차 사고'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이미 생산직 근로자 노령화가 일반화한 뿌리산업에서는 우려가 더 큰 상황이다. 양태섭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통상 주물업체들은 생산직 근로자 평균연령이 60세를 훌쩍 넘어선다. 젊은 세대가 뿌리업종을 기피하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라며 "노령화한 근로자들이 숙련도는 있지만 반응속도가 느려 사고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안전관련 예산이 부족한 영세한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영세 중소기업 사업자들이 무리한 법 적용으로 인해 범법자가 되지 않도록 유예기간을 연장해야 할 것"이라며 "전문인력 인건비 지원과 시설개선비 지원 등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중소기업 현장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한 것은 분명하지만, 영세한 중소기업은 법 시행에 대한 부담을 여전히 크게 느낀다"며 "중소기업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정부 지원예산 확충과 함께 대·중소기업 간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utter@fnnews.com 강경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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