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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주의 아트살롱] 예술은 나쁜 남자를 좋아해?

'불경스런 상상력' 무이리치오 카텔란
열등감·결핍의 아이콘 다자이 오사무
예술가들이 세상을 보는 눈은 다를까?

[이환주의 아트살롱] 예술은 나쁜 남자를 좋아해?
2019년의 화제작 '코미디언'. 지난 1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리움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가의 개인전 '위'(WE) 전시에 '코미디언'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 전시는 31일부터 7월 16일까지 열린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2019년 12월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 바젤 마이애미', 한 예술가가 전시장 벽면에 바나나를 하나 붙여 전시했다. 작품 제목은 '코미디언'. 시중에 파는 흔하고 흔한 바나나일 뿐이지만 해당 작품의 가격표는 12만달러(약 1억5000만원)였다. 그런데 데이비드 다투나라는 헝가리의 퍼포먼스 아티스트가 전시 중이던 바나나를 먹어치우는 일이 발생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태연하게 새 바나나를 붙여서 다시 전시했다. 데이비드 역시 12만 달러를 배상하지 않았다. 해당 작품은 '바나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들이 꿈꾸는 글로벌 아트 바젤에서 '바나나'를 전시한다는 개념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1억5000만원짜리 '바나나 작품', 먹어도 되나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일화다. 그는 작품을 창작하고 전시한 뒤 작품에 대한 일체의 해설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의 제목이 '코미디언'인 것은 바나나 한송이를 12만 달러나 주고 사는 미술계를 풍자한 것인지, 아니면 예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세태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 그 이기에 작품 너머는 온전히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발칙한 상상을 해보자.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코미디언' 해프닝 이후로 더 유명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유명세덕에 그의 작품 가격 역시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됐을 것이다. 만약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을 이미 여럿 소유한 콜렉터가 있었다면 '코미디언' 해프닝 이후 그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작품들의 가격은 더 올랐을 수도 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마이애미 바젤을 앞두고 어두운 지하실에서 바나나를 먹어버린 예술가, 그의 콜렉터와 함께 모여서 '코미디언' 전시 이후 크게 한 탕할 생각에 기쁜 미소를 짓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현대 미술사에 획을 긋는 전시에 이런 불경스런 상상을 한다는 것은 큰 실례일 수 있다. 하지만 마우리치오 역시 언제나 논쟁적인 작품으로 기존 미술계에 큰 충격을 불러온 작가이기에 개의치 않을 수도 있다.

운석에 맞은 교황, 공손한 히틀러 '불경스런 상상들'

리움미술관은 올해 첫 전시로 이탈리아 출신 작가 무이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를 7월 16일까지 개최한다. '코미디언'을 포함해 총 38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교황이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 '아홉 번째 시간',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 꿇은 히틀러의 모습을 한 '그'는 전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환주의 아트살롱] 예술은 나쁜 남자를 좋아해?
작품 '아홉 번째 시간'은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모습이다. 권위와 사회적 관행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을 보야준다. /사진=뉴시스

카텔란의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다들어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 받는다. 프랑스의 예술가 뒤샹은 1917년 기성 변기를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출품한 작가다.

'코미디언'의 일화는 이보다 1년 정도 앞서 경매에 출품 됐던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철저하게 얼굴을 감추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뱅크시는 예술계 전반을 비판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2018년 10월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경매에 나왔고 당시 작품은 104만 파운드(당시 기준 15억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낙찰과 동시에 액자에 장치된 특수 설비가 그림을 분쇄기로 잘라서 작품은 파손됐다.

얼굴 없는 화가로 알려진 뱅크시가 현대 미술시장의 작품거래 관행을 조롱하기 위해 액자에 분쇄기를 설치해 낙찰과 동시에 작품을 조각내 없애 버리는 시도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절반 정도만 파손된 그의 작품은 3년 뒤인 2021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 다시 출품돼 300억원에 팔렸다. 파손된 작품의 '사랑은 휴지통에'라는 제목을 달았다.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뱅크시 이 둘은 모두 현대 미술계의 허례허식과 허영에 반기를 든 작가들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아니 어쩌면 자연스럽게도 예술계는 이들이 미술계를 배척할 수록 이들을 더 사랑했다. 이들의 작품 가격은 그들이 예술계를 배척하고, 비판할 수록 더 올라만 갔다. 어쩌면 예술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눈'은 왜 다를까

예술가들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세상을 본다. 다르게 본다는 것은 처음부터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거나, 다른 필터를 통해 그것을 보거나, 설령 같은 각도 같은 필터로 같대상을 보더라도 사유를 통해 본 것에 대한 해석을 범인들과는 달리 한다는 의미다.

화가, 시인, 작곡가, 조각가, 소설가 등 '예술 한다'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몇몇 공통적인 특징들이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 따라 ENTP, ISFJ 등 사람을 나누는 것처럼 'A'(Artitic·예술적인)한 경향이 있다. 넘치는 호기심, 풍부한 감수성, 따뜻한 시선 등 A를 대표하는 많은 특징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어쩐지 좀 꼬여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꼬여 있다'라는 것은 부정적 의미와 동시에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시인 윤동주를 다룬 영화다)를 찍고 나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열등감'이 성장의 동력이라고 말했다.

영화 '동주'에서도 윤동주는 유년 시절 송몽규라는 그의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시도 잘쓰고 머리도 좋다. 유년의 윤동주에게 송몽규는 모짜르트였고 자신은 살리에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윤동주를 기억하고 있다.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그를 지배했던 열등감

'인간실격'을 쓴 다자이 오사무 역시 열등감 덩어리였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난 자신의 출생에 마저 열등감을 느꼈다. 그는 청년 시절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고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심취했으나 자신의 사회적 계급에 절망하고 여러차례 자살을 시도한 끝에 결국 목적한 바를 이룬다. 미시마 유키오가 그의 자살을 두고 "냉수마찰이나 기계체조 같은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면 자살했을 리가 없다"라고 비판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환주의 아트살롱] 예술은 나쁜 남자를 좋아해?
다자이 오사무 / 사진=민음사 제공

열등감, 결핍, 내면의 어둠과 같은 요소들은 예술가 개인을 갉아 먹을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예술로 승화되기도 한다. 진주를 만들기 위해 진주 조개 안에 다른 조개의 껍질이나 모래알을 넣는 것처럼 꼬인 성격을 유발하는 그런 '이물'들이 알 수 없는 화학 작용을 하는 것이다.

'결핍'은 한 인간의 내면을 '꼬아' 버리기도 하지만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들기도 한다. 성숙해진 인간은 미숙할 때의 시선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해석할 것이다. 굳이 예술까지가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금발 여성은 멍청하다'거나 일부 동양권 국가에서는 '가슴이 큰 여자는 둔하다'는 속설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속설은 남성이 여성을 외모로 판단하는 과거의 구태이자 악습이며 근거없는 미신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싸다. 하지만 한 번 돌려서 생각해 보면 '금발 여성'과 '가슴이 큰 여성'이라는 기표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남성의 호감을 사는데 어려움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기의가 될 수도 있다.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도, 성찰도 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쉽게 가질 수 있는 경우다. '멍청하다', '둔하다'는 어쩌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찰하는 사유의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다는 걸 달리 표현할 걸지도 모른다.

매력적인 이성(혹은 동성)이 되는 것은 유전자와 호르몬의 레벨에서부터 한 유기체의 강력한 삶의 동력이 된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타리스트이자 부활을 만든 김태원 선생은 자신이 처음 기타를 잡은 이유에 대해 "한 소녀를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무려 제목이 '사랑의 기술'을 쓴 에리히 프롬 역시 사랑이 넘치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그런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에 남을 만한 대부분의 과학적 이론, 예술적 성취는 20~30대에 이뤄진 경우가 많다는 가설이 있다. 한 개체로서 인간은 20~30대, 프로이트가 말한 리비도(성적 충동)가 가장 풍부한 시기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다는 것이다.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이나 상대성 이론을 만든 아이슈타인 역시 그 이론에 대한 발표와 논문은 중년 이후에 냈을지라도 그 이론의 뼈대가 되는 아이디어는 20~30대에 이미 마쳤다고 한다.

진주조개가 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몸 속에 침투한 불순물을 약 2년여의 시간 동안 몸 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불순물은 조개의 몸속에서 돌고 돌다 조개껍질을 만드는 물질이 천천히 쌓이며 진주가 된다고 한다. 어쩌면 예술가의 '눈'도 태어날 때부터 달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개의 몸에 침투한 불순물처럼 오랜 시간 예술가들의 몸 속을 돌고 돌아 어느 순간 세상에 나오는 것은 아닐가. 그리고 그 불순물(열등감, 결핍, 질투 그게 무엇이든)이 몸 속을 돌고 돌다 보니 그들의 심정은 범인들이 볼 때 '꼬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에게 '냉수마찰'과 '기계체조' 악담을 퍼부었던 미시마 유키오도 자신의 일생을 할복자살로 마감했다고 한다. 후일에 문학 평론가와 심리학자들은 이런 미시마가 다자이에게 악담을 퍼부은 것은 "미시마의 내면에 다자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평을 했다고 한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