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300% 수익보장, 친구 데려오면 소개비"
가상자산 잘 모르는 고령층 타깃… 작년 피해액 1조
규제 사각지대에, 피해자 신고 없으면 경찰 수사 못해
사기범들은 수천억 사기 치고도 징역 몇년 살면 그만
검찰·경찰·금감원 공조로 범죄수익 끝까지 추징해야
블록체인, 가상자산, 대체불가토큰(NFT) 등 신기술을 앞세운 불법 다단계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거에는 화장품이나 생필품 등 실물자산 위주로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블록체인 등 신기술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신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다. 올해 초 검찰이 서민들을 겨냥한 가상자산 관련 범죄, 불법 사금융 범죄 관련 엄정 대응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지만 정부 관리감독 사각지대에서 불법 다단계 사기가 진화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 지난 1월 2조원대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상자산 거래소 '브이글로벌' 김 모 대표에게 징역 25년형이 확정됐다. 함께 기소된 운영진 3명은 징역 4∼14년씩을 확정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가상자산 '브이캐시'에 투자하면 300% 수익을 보장하겠다거나 다른 회원을 유치하면 소개비를 주겠다고 속여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끌어다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이들이 지난 2020년 7월부터 2021년 4월까지 회원 5만여명에게서 받아 챙긴 돈은 약 2조8000억원에 달했다. 일부 투자자에겐 수익이라며 돈을 주기도 했지만 나중에 가입한 회원의 투자금을 먼저 가입한 회원에게 지급하는 전형적인 '돌려막기' 수법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 매일 광고만 봐도 수익금을 지급한다고 속여 한국인 약 2100명으로부터 투자금 407억여원을 빼돌린 '퓨처넷' 사건의 피의자들이 해외에서 검거됐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각각 붙잡힌 폴란드인 A씨(49)와 독일인 B씨(61)는 2016~2020년경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련 업체인 '퓨처넷'에 투자하면 70% 수익을 보장한다며 국내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2012년 폴란드에 설립된 '다단계 금융사기' 페이퍼 컴퍼니인 퓨처넷은 일정의 광고팩을 구입하고 회원으로 가입한 뒤 퓨처넷의 웹페이지 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광고를 보면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신규 회원과 투자 금액을 모아오는 만큼 기존 회원들에게 수당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전형적인 다단계 금융사기 수법이었다. 경찰은 법무부를 통해 두 피의자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할 방침이다.
■고령층 노리는 가상자산 다단계 사기 피해 지난해 1조원 넘어
8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과 관련 범죄 피해액은 1조192억원에 달했다. 가상자산 거품 붕괴로 시장이 침체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가상자산 관련 범죄 피해액은 지난 2018년 1693억원, 2019년 7638억원, 2020년 2136억원에 그쳤다가 2021년 가상자산 급등기에 3조1292억원으로 크게 불어난 뒤 2022년에도 1조192억원으로 1조원대를 유지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 붐이 더해져 금융사기가 크게 확산되는 모양새"라며 "피해자의 신고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하는 경찰과 등록된 금융기관의 피해사례만 지원하는 금융감독원이 눈뜨고 지켜보기만 하기 때문에 금융사기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유행하는 가상자산 다단계 사기 수법은 투자 징표로 NFT를 판매하는 것이다. 다단계 사기 업체들은 해당 NFT가 매매·양도가 가능하며 유틸리티 코인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불법 다단계 사기 업체가 노리는 피해자는 대부분 고령층이다. NFT, 가상자산, 블록체인,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신기술에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경기불황을 틈타 매월 배당금을 준다고 홍보하는 다단계 사기에 경제 취약층인 고령층이 현혹되기 쉽다.
가상자산이나 NFT가 법으로 정한 금융투자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불법 다단계 업체들이 악용하는 측면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NFT는 일반적으로 가상자산으로 규정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개별 사안별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다단계 사기 피의자들이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형사처벌에 따른 위험 비용보다 범죄행위로 인한 경제적 이득이 훨씬 크다 보니 불법 다단계 사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1조원대 다단계 사기로 '제2의 조희팔'로 불리는 IDS홀딩스 김 모 전 대표는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방문판매업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확정받았다.
미국, 영국, 홍콩 등 선진국들이 금융범죄에 대해 불법 이득 전액 몰수와 형사처벌, 행정처벌 등으로 강력 대응하는 것과 비교된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사기범으로 알려진 버나드 메이도프는 다단계 금융사기 혐의로 150년형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지난 2020년 사망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주범이 사기를 기획하면 다단계 사기꾼들이 기존 조직을 데리고 합류하는데 초기에 들어가면 실제로 돈을 벌고 사건이 터져도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매번 빠져나간다"며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다단계 사기는 항상 업그레이드된 재범으로 다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관련 법·제도 적극 활용…피해자의 적극 고소도 필요"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가상자산 다단계 사기를 근절하기 위해 △자본시장법 및 범죄수익 추정 제도 적극 활용 △검찰·경찰·금융감독원의 공조 강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경찰·대검찰청의 상시 모니터링 및 신고 접수 절차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예자선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불법 다단계 사기에 적용되는) 사기 또는 유사수신행위는 피해자 신고가 있어야 수사가 시작된다"며 "피해 금액이 소액이고 피해자가 다수일 경우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않아 피해 금액이 조 단위로 커지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했다.
이 점에서 피해자 신고가 필요없는 자본시장법을 적극 활용해 초기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예 변호사는 주장했다.
자본시장법상 50인 이상을 대상으로 2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모집할 경우 사업계획을 기재한 증권신고서를 금융위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다단계 사기는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범죄수익은 검사가 '범죄수익은닉의규제 및 처벌법'을 활용해 수사중에도 적극 추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검찰·경찰·금감원의 공조 강화도 필요하다. 예 변호사는 "수사 지위 도중에 담당 검사가 바뀌면서 사건이 뭉개지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금융 다단계 사기 건에 대한 특별한 트랙이나 이첩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이나 경찰 사이버수사대, 대검찰청에서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해 초기 사건 인지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피해자들의 경우 △경찰에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투자를 권유한 지인 및 법인도 고소해 피해금 환수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황승익 한국NFC 대표는 "사기를 인지하면 경찰서 신고나 고소부터 해야 한다"며 "고소장 또는 진정서 작성은 육하원칙에 따라 피해 사실과 아는 내용을 적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불법 다단계 업체 뿐 아니라 투자를 권유한 지인도 함께 고소해야 한다. 황 대표는 "가상자산을 발행한 회사는 해외법인 또는 유령회사라 책임을 묻기 어렵고, 국내 법인이라 해도 변호사를 고용해 적극 방어하는 만큼 법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경우 피해금을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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