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기술의 발전과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여행산업도 진일보하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으로 기존 여행사가 온라인 여행사(OTA)로 진화하고, 성숙기에 접어든 것이 최근 10여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OTA는 여행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과 숙박을 최저가로 찾아준다는 고객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우선 고객은 최저가를 찾아주는 플랫폼을 옮겨가며 구매하는 것이 낫고, 공급자도 복수의 플랫폼에 상품을 내거는 것이 유리하다. 플랫폼 충성도가 비교적 낮고, 차별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에 OTA 시장은 차별화 요소를 개발하는 대신, 몸집을 불려가면서 거래액을 키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플랫폼에 현금이 유입되는 시점과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현금이 유출되는 시차가 존재하는데 그 사이에서 거대한 자금을 운용하며 금융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OTA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나타내며 여행의 본질적인 요소인 장소와 시간, 경험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혁신을 시도하는 도전자들이 있다.
■장소의 확장-스테이폴리오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 또는 지인들과 펜션에 숙박해본 경험이 있다면 몇몇 불쾌한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청결하지 못한 외관과 내부시설,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인근의 즐길거리 등이다.
2015년 설립된 스테이폴리오는 '파인스테이' 큐레이션을 지향한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의 파인다이닝처럼 고습스러운 숙소와 만족스러운 여행 경험을 제안하는 것이 목표다. 누구라도 하루쯤 묵고 싶은 숙소를 찾아 큐레이션하거나 여행자의 감성 및 동선을 고려해 공간을 전면 재구성하기도 한다.
스테이폴리오가 여행장소를 큐레이션하는 기준은 독창성, 디자인, 환대, 그리고 가격이다. 이들 요소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어야 입점이 가능하다. 건축가 출신인 이상묵 대표의 철학에 따른 것으로 플랫폼의 개성과 차별화를 만들어낸다. 입점하는 공간들 역시 자신들의 철학에 부합하는 플랫폼에 입점하기를 원한다는 측면에서 소싱 경쟁력 확보도 기대할 수 있다.
덕분에 스테리폴리오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산업이 침체됐던 2021년 시리즈A로 50억원을 유치했고, 지난해 12월에 같은 라운드로 50억원을 추가했다.
스테이폴리오는 트래픽과 소비자 거래 측면에서 월 평균 4.4%, 5.0%의 증가세를 보이며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혁신의숲 관계자는 "스테이폴리오의 기준을 충족한 국내 숙소와 특정 수요 고객 집단의 교집합에서 수익 시장이 형성돼 있고, 고객들의 취향과 숙소의 질적인 동반 성장이 이뤄질 것이기에 수익 시장의 크기가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해외여행의 회복에 발맞춰 해외 지점을 늘리는 방식으로도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양질의 인력 수급이 필수적인데 3년 전에 비해 4배 가까운 조직 확대를 이뤄내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시간의 확장-트래블메이커스(호텔에삶)
제주도를 비롯해 여러 지방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이다. 많은 단기임대 플랫폼들이 임대매물을 받아 플랫폼에 입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으나 고객 가운데는 편리한 시설, 서비스와 접근성을 중시하는 고객이 존재한다.
트래블메이커스는 2019년 설립됐다. 장기투숙 트렌드에 맞게 접근성과 편의성의 좋은 호텔에서 '한 달 살기'를 제안하는 '호텔에삶'을 운영하며 높은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호텔과의 독점계약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 차별화 포인트로 작용, 월 평균 트래픽 증가율 16.9%의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혁신의숲 관계자는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양면 플랫폼의 경우 모두를 만족시켜야 비즈니스가 성사된다"면서 "호텔에삶은 언뜻 수요자 중심 서비스로 보이지만 공급자에도 충분한 고객가치를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숙박업은 평일과 주말의 수요가 불규칙하다. 공실이 큰 리스크다. 기존 OTA는 단순히 예약을 중개하는 역할에 마무르는 탓에 수요예측이나 공실 리스크를 해소해주지 못하는 반면, 호텔에삶은 장기투숙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고객관리를 담당해주므로 공급자들로부터 놓은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 결과 트래블메이커스는 2021년 영업흑자를 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초기에 수익성을 포기하고 규모 확대에 힘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혁신의숲 관계자는 "아직 입점하지 않은 국내 호텔 및 해외 거점으로 확장된다면 훌륭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트래블메이커스는 지난해 5월 프리-A 투자로 마젤란기술투자와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10억원을 유치했는데 후속 라운드에서 본격적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불러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경험의 확장-트립비토즈
'어느 시점이 여행의 시작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설렘'을 기준으로 따져본다면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됐다는 판단이다. 트립비토즈는 영상 콘텐츠를 기반으로 여행 경험의 범위를 확장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OTA는 텍스트와 사진을 베이스로 정보를 전달한다. 하지만 고객들은 스크롤을 내리며 텍스트와 사진을 '공부'해야 하는데 피로감을 호소한다. 트립비토즈는 여행지를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미리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또 고객들이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리워드(보상) 체계를 구축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트립비토즈는 월간 활성이용자 수(MAU) 및 거래건수 성장률이 각각 8.6%, 4.1%를 기록했다. MAU는 약 17만명, 월 거래건수를 2만건에 이른다. 30만원이 넘는 높은 평균 거래단가를 감안하면 일정부분 시장성을 증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수의 고객을 확보한 기존 OTA들도 영상 리뷰 등을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전면적인 개편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트립비토즈의 차별적인 매력이 여기에 있다. 이 덕택에 트립비토즈는 2020년 1월 시리즈A로 33억원, 2021년 10월 프리-B(60억원)에 이어 지난해 12월 시리즈B로 50억원을 각각 투자받았다.
다만, 트립비토즈는 2021년 결산 기준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혁신의숲 관계자는 "대량의 영상 콘텐츠 업로드와 대규모 트래픽으로 다른 플랫폼 대비 서비스 유지에 과다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해외진출이나 콘텐츠 역량강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여행산업은 가치사슬 내에서 여러 산업과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주고받는다. 스테이폴리오나 호텔에삶, 트립비토즈와 같은 스타트업 비즈니스가 성장하면 산업 전·후방에서 새로운 사업기회가 창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팬데믹으로 여행산업이 주춤했던 만큼 향후 도약의 폭은 더욱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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