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기업 즉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경영자가 추구할 궁극적 목적은 주주가치의 증대에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다. 주주가치의 증대는 주식배당금과 주식가격의 증가로 측정된다. 이를 달성하는 길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출과 이익을 증대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 고객, 공급기업, 채권자 및 주주를 포함한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균형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요체다. 혹자는 세계적 팬데믹 이후의 어려운 거시경제 환경 속에서 이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기업의 종업원은 보다 높은 급여를 원하고, 고객은 가격에 비하여 보다 높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기대하며, 공급기업과 채권자는 납품대금과 원금 및 이자의 지불 기한에 맞춘 차질 없는 지불을 바란다. 최종적 청구인으로서의 주주는 배당금과 미래의 배당금 증대 가능성을 반영한 주식가격의 증가를 원한다. 만약 기업이 이해관계자들의 재무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기업 경영활동의 터전인 시장은 고객으로 구성되고 환경과 사회가 존속되지 않으면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사고의 맥락에서 최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란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즉 기업이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던 '주주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종업원, 고객, 공급기업,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번영과 공존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개념으로 2020년 다보스 포럼의 핵심 의제로 등장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이를 경영철학으로 반영한 것이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이다. 2022년 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공표한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법' 초안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개념을 반영하여 기업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인 실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연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은 실천 가능한가? 현실적으로 기업이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을 도입할 경우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에 반영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 할 길임에 틀림없다. 우선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 간에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이 이뤄진다면 보다 경쟁력 높은 공급망이 구축되어 세계시장에서 동반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최고경영자가 주도하여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내부 구성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경영철학이 주주 중심 경영에서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으로 변화되고 있는 현상은 영국의 정치인이자 정치철학자인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에 관한 사상과 맥락이 닿아있다고 할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사회질서와 공공선을 강조하고 이를 침해하는 극단주의와 권력 남용에 저항했고, 어느 하나의 세력이나 주장에 경도되어 극단으로 치닫는 전체주의적 사회와 급진적인 변화는 반대했다.
그러나 변화 자체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변화의 수용이 사회질서를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야만 사회질서 자체가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다음 세대까지 이어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진정한 개혁은 급진적 변화가 아닌 사회질서를 진화시키는 것이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생각은 한국의 정치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문병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