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 1년
줄줄이 철수한 해외기업과 달리
우리기업 공장 멈췄지만 버티기
그사이 삼성·LG 등 점유율 내줘
전문가 "복귀 준비 기회 삼아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가 1년이 되도록 종전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서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주요 기업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애플, 메르세데스벤츠, 르노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일찌감치 탈(脫)러시아 행렬에 동참한 것과는 달리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들은 현지 공장 가동중단이 무기한 지연되면서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년간 국내 주요 기업들의 러시아 시장 매출 손실 규모만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진입장벽이 높은 러시아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현지 철수보다는 현지 거래처 관리 등 저강도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기업들의 고충은 깊어질 전망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전쟁 이후 러시아 현지법인의 생산공장 가동과 판매를 전면 중단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작년 3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에 TV·모니터 공장 가동을 멈췄고, LG전자는 지난해 8월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루자 지역에 가전 및 TV 생산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삼성전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전까지 러시아 시장에서 스마트폰과 TV 시장점유율 1위였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러시아법인 매출은 2019년 2717억6000만루블(약 4조7231억원), 2020년 3070억2200만루블(약 5조3360억원), 전쟁 직전 해인 2021년 3610억2000만루블(약 6조2745억원)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삼성 스마트폰도 '러시아 국민폰'으로 지위를 굳혔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전쟁 전인 2020년 25%, 2021년 30%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도 2021년 러시아와 주변국에서 거둔 매출이 2조335억원으로 전년 대비 22% 성장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 3·4분기 기준 삼성 스마트폰의 러시아 시장점유율은 0%대로 추락했다. 삼성전자의 빈자리는 중국 업체들이 꿰찼다. 러시아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출하량 기준) 1위는 중국 샤오미로 33%에 달한다.
통상 전문가들은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원용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러시아 시장은 '구소비에트 블록'의 핵심"이라면서 "러시아를 포기하고 중앙아시아나 구소련 동유럽 국가들에 진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유라시아팀 팀장은 "모라토리엄 사태 때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를 떠난 것과 반대로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기업들이 오히려 사업을 확장하며 현지 국민들의 마음을 얻은 것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철수선언 대신 '포스트 워' 시대를 착실히 준비하겠다는 분위기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포스트 워 시대를 기다리면서 현지 거래처를 관리하며 복귀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며 답답해했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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