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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과실향이 스펙트럼처럼 촤악..바삭한 산도까지..모젤 리슬링의 진수를 봤다

독일 모젤 유명 와이너리 셀바흐 오스터 와이너리 오너 겸 와인메이커 요하네스 셀바흐를 만나다
리슬링의 페트롤 향은 섬세한 풍미 해치는 결함..숙성 과정에서 드러나야 제 맛
편암이 가진 떼루아 특징 존중한 양조법..다양한 와인마다 분명한 개성 드러내

섬세한 과실향이 스펙트럼처럼 촤악..바삭한 산도까지..모젤 리슬링의 진수를 봤다
셀바흐 오스터 와이너리는 모젤강을 끼고 가파른 경사에 위치해 있다. 셀바흐 와이너리 빈야드에 매달린 리슬링 포도들이 탐스럽게 익어 있다. 사진=셀바흐 오스터 페이스북.

섬세한 과실향이 스펙트럼처럼 촤악..바삭한 산도까지..모젤 리슬링의 진수를 봤다

섬세한 과실향이 스펙트럼처럼 촤악..바삭한 산도까지..모젤 리슬링의 진수를 봤다
셀바흐 오스터 오너이자 와인메이커인 요하네스 셀바흐가 와인잔을 들고 향을 음미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으흑, 이게 무슨 향이지?"
리슬링(Riesling) 와인을 특징짓고 상징하는 풍미로 알려진 페트롤(Petrol) 향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지난 22일 서울을 찾은 독일 모젤지역 유명 와이너리 셀바흐 오스터(Selbach Oster)의 오너이자 와인 메이커인 요하네스 셀바흐(Johannes Selbach)를 만난 자리에서다. 페트롤 향은 리슬링 와인에서 주로 느낄 수 있는 휘발유 향 등 석유 냄새로 화학적 성분은 'TDN(1,1,6-trimethyl-1,2-dihydronaphthalene)'이다. TDN은 포도 송이가 햇볕에 과도하게 노출되거나, 물 부족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씨를 보호하기 위해 껍질에 이 성분을 만들어낸다. 즉, 번식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한 본능적 활동으로 레드 포도 품종의 경우 햇볕이 강해지면 껍질을 두껍게 만들어 씨를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 작용이다.

페트롤 향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지만 대체로 와인의 결함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리슬링 품종이 다른 포도 품종보다 TDN 성분 함량이 몇 배나 많지만 페트롤 향이 난다는 것은 포도 생장에 있어 극한을 넘어서는 충격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요하네스 셀바흐는 "리슬링 와인에 있어 페트롤 향은 섬세한 풍미를 방해하는 부정적인 요소"라며 "포도가 열에 과도하게 노출돼 껍질에 변화가 생기는 '왁스 스킨(Wax Skin)' 현상으로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리슬링 와인에서 페트롤 향은 일정 기간 숙성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은 정상이지만 어린 와인에서 나는 것은 좋지 않은 향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리슬링의 페트롤 풍미는 더운 곳일수록 강하게 나타나고, 추운 곳에서는 숙성이 한참 이뤄진 다음에 생긴다. 독일에서는 서늘한 기후인 모젤(Mosel)보다 좀 더 포근한 라인가우(Rheingau) 지방에서 더 많이 맡을 수 있으며, 햇살이 대체로 강한 신대륙 지역에서 특히 많이 나타난다. 요하네스 셀바흐는 "우리 와이너리는 기요(Guyot) 방식으로 포도나무를 재배하지만 왁스 스킨을 막기 위해 줄기 일부를 위로 끌어올려 포도송이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슬링 산지 중 가장 추운 곳인 모젤에서조차 포도송이가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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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바흐 오스터 와이너리 빈야드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 사진=셀바흐 오스터 페이스북.


요하네스 셀바흐가 소유한 셀바흐 오스터 와이너리는 총 24ha 규모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 중 하나인 모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 지역으로 꼽히는 젤팅겐(Zeltingen)에 위치해 있다. 1600년 가족경영으로 시작해 400년 넘게 모젤을 대표해 온 프리미엄 와이너리다. 모젤에서도 드물게 빈야드 대부분이 편암으로 이뤄져 있는게 특징이다. 편암은 잘 부서지는 토양으로 포도 나무 뿌리가 깊게 내리는데 유리한데다 미네랄이 풍부하고 PH가 낮아 아주 섬세하고 산도가 좋은 리슬링 와인이 나온다. 게다가 모젤강을 향한 경사도가 심한 곳은 60도에 달한다. 요하네스 셀바흐는 "두 걸음 올라가면 한 걸음 밑으로 내려온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가팔라 모든 포도를 일일히 손으로 직접 수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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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젤강을 바라보고 있는 셀바흐 오스터 와이너리 빈야드는 너무도 가팔라 경사도 심한 곳은 무려 60도에 달하는 곳도 있다. 사진=셀바흐 오스터 페이스북.


요하네스 셀바흐는 "리슬링은 만생종이라 긴 시간동안 천천히 익어가며 여러가지 풍미를 차곡차곡 쌓아가는게 중요하다"며 "셀바흐 오스터는 높은 산도와 섬세한 풍미를 살리기 위해 일반적인 리슬링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를 더 낮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셀바흐 오스터 와이너리는 카비넷의 경우 좀 더 산도를 높이고 드라이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다른 곳보다 보다 이르게 수확을 한다. 그는 "와인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다 다르지만 카비넷은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포도알이 그린 빛에서 옐로우 빛으로 넘어가는 그 잠깐의 시기에 빠르게 모두 따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아주 과실향이 살아있는 신선하고 드라이하며 알코올이 낮은 와인이 나온다는 것이다.

요하네스 셀바흐는 또 셀바흐 오스터 와인에 대해 "양조 과정에서 스킨 컨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숙취가 없는 것도 우리 와인의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스킨 컨택을 거치면 히스타민(Histamine) 성분이 나와 위경련과 두통을 유발하는데 셀바흐 오스터 와인은 포도를 천천히 압착하기 때문에 스킨 컨택 비중이 10% 이내로 아주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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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을 방문한 요하네스 셀바흐가 셀바흐 오스터 와이너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요하네스 셀바흐는 자신들의 대표적 와인 3종을 열어 시음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날 나온 와인은 '셀바흐 오스터 젤팅거 리슬링 카비넷 트로켄(Selbach Oster Zeltinger Riesling Kabinett Trocken)', '셀바흐 오스터 리슬링 존넨누어 GG(Selbach Oster Riesling Sonnenuhr GG)', '셀바흐 오스터 리슬링 카비넷(Selbach Oster Riesling Kabinet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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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바흐 오스터 리슬링 존넨누어 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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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바흐 오스터 젤팅겐 리슬링 카비넷 트로켄.

젤팅거 리슬링 카비넷 트로켄과 리슬링 존넨누어 GG는 모두가 젤팅거 싱글빈야드에서 나는 특급 포도로 만든 리슬링 와인이다. 그러나 두 와인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젤팅거 리슬링 카비넷 트로켄은 포도나무 수령이 15년 된 어린 묘목에서 나는 포도로 좀 이른 수확을 통해 와인을 만든다. 그래서 포도 송이가 크고 힘이 좋은데 좀 더 빨리 수확하므로 개성이 극단적으로 차고 넘친다. 알코올 도수는 11.8%다. 반면 리슬링 존넨누어 GG는 40년 이상 된 오래된 고목에서 나오는 와인이다. 밭도 젤팅겐 지역에서 가장 가파른 경사를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수확도 좀 더 늦춰 수확한다. 알코올 도수는 12.5%다.

두 와인은 성격도 완전히 반대다. 젤팅거 리슬링 카비넷 트로켄은 아주 쨍한 산도에 아삭한 느낌의 청량감이 일품이다. 그냥 "바스락 거린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마치 냉장고 문을 열어 새콤한 과실 주스를 들이킬 때 느낌처럼 시원하고 강렬하다. 그러나 리슬링 존넨누어 GG는 여러가지 과실향이 굉장히 강하게 들어온다. 열대 과일의 화려한 향부터 서늘한 청사과향도 있다. 게다가 꽃향도 섞여 있다. 모난 구석이 하나도 없이 아주 좋은 것만 다 뽑아서 담아놓은 것 같다. 루프트한자 항공기 퍼스트 클래스에 들어가는 특급 와인이다.

이처럼 두 와인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지만 전문가들은 한결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리슬링 존넨누어 GG는 2019년 제임스 서클링이 96점, 2020년은 93~94점으로 높은 점수를 줬다. 또 젤팅거 리슬링 카비넷 트로켄은 2019년 90점, 2020년 92점을 줬다.

요하네스 셀바흐는 "리슬링 존넨누어 GG는 숙성 잠재력이 30년 이상인 아주 좋은 와인으로 10~12년 지난 뒤에 열게 되면 바디감이 더 커지고, 복합미도 훨씬 많아져 더 좋은 와인으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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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바흐 오스터 리슬링 카비넷.


세번째 서빙된 리슬링 카비넷도 시장에서 굉장히 고평가를 받는 와인이지만 앞서 두 와인이 워낙 출중한 모습을 보여서 상대적으로 감흥이 덜했다. 리슬링 카비넷은 젤팅거 싱글 빈야드에서 나는 포도로 빚는 상위 레인지 와인이다. 로버트 파커로부터 2017년 92점을 받을 정도로 좋은 와인이다. 아주 신선한 과실 향과 균형잡힌 산도, 드라이한 풍미가 굉장히 좋다. 다만 앞서 두 와인이 워낙 드라이하고 산도가 강하고 과실향이 좋아 좀 밋밋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셀바흐 오스터 와이너리는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지만 이미 300여년 전부터 상생경영에도 남다른 실천을 보여왔다. 요하네스 셀바흐는 "지난 360년이 넘게 가족경영을 이어오면서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것은 와인을 만들고 있는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가족과 똑같은 마음으로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생각으로 서로 존중하며 와인을 만들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 와인은 떼루아가 가장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만드는 사람도 중요하다는 말이 생각난 자리였다.
섬세한 과실향이 스펙트럼처럼 촤악..바삭한 산도까지..모젤 리슬링의 진수를 봤다
셀바흐 오스터 와이너리에 달린 탐스런 포도. 사진=셀바흐 오스터 페이스북.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