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경영계의 화두는 단연 환경·사회·지배구조(ESG)였다. 그 열풍은 국제 금융시장에서부터 불어 왔다. 처음에는 투자 관점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경영 패러다임으로 통용되고 있을 정도로 개념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차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ESG에 대한 피로감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준비 없이 몰아치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ESG 용어나 유사기관의 남발도 피곤하게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한 "ESG는 사기이다"라는 말을 진짜로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글로벌 경영지도자들이 우왕좌왕 던지는 메시지는 피로감을 넘어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사실 ESG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 확고하면 과정 중의 이런 의구심과 피로감은 다 물리칠 수 있다. 원래 공부할 때는 힘든 법이다. 내용을 따라가기도 어렵고, 목표 달성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더 그렇다. 실천하고 성과가 나야 피로감이 가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지 않나. ESG 피로감을 극복하려면 기업 현장에서는 신념과 철학을 확고히 하여 직접 실천해야 하고, 자본시장에서는 투자를 통해 ESG 경영성과를 입증해야 하고, 평가기관에서는 말로만 하거나 무늬만 ESG인 사업들을 분별해 내야 한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고 세계적 경제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한 말도 있지만, 사업내용이 공개되어 평가를 받다 보면 무늬만 ESG인 사례는 많이 걸러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시를 주도하는 기관도 많고, 기관 간 기준도 다 다르다 보니 현장에서는 혼선이 올 수밖에. 지금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동향을 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US SEC),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유럽연합재무보고자문그룹(EFRAG) 모두 다르다. 통일된 기준이 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SG에 대한 또 다른 피로감은 ESG 경영성과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온다. 도대체 다양성이나 사회적 가치 같은 비재무적 구조가 어떻게 기업의 경영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건지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하지만 국제 자본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성 다양성과 성 형평성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증명하기 위하여 4년 전 태어난 ESG펀드가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이 운영하는 우먼펀드이다. 지금처럼 주식시장이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도 작년 3월 기준으로 평균을 상회하는 투자수익률을 기록했으니 다양성의 효과를 증명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 등 우리나라 연기금들도 말로만 ESG를 외칠 것이 아니라 다른 해외 연기금처럼 투자를 통하여 자본시장에서 ESG의 효과를 증명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현재 다소의 의구심과 피로감이 있다 하더라도 ESG 존재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과거로 회귀할 수는 더더구나 없다.
변화는 벌써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제현주 인비저닝 파트너스 대표는 저서 '돈이 먼저 움직인다'에서 자본시장이 일으킨 파도는 기업과 소비자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피곤하다고 남 탓만 할 것인가, 자본시장의 변혁을 받아들일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이제 기업의 몫이다.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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