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철호 재정회계법인 대표이사
회계투명성에 필수… 틀 유지해야
감사독립성만큼 책임·리스크 커져
회계법인은 교육·품질관리 힘써야
이해관계 끊어 경제건전성 올릴것
회계업계는 검증 대상이 검증 주체를 직접 고르는 전도된 구조를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됐다고 인식하고 있다. 기업이 감사인을 자유롭게 6년 선임했다면 다음 3년은 금융당국이 지정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기업들은 비용 증가를 이유로 이를 '규제'로 규정하고 '완화'에 힘을 싣고 있다.
나철호 재정회계법인 대표이사(사진)는 "새 정부 들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하며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해 필수적인 제도로, 근본 틀을 바꾸는 작업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거론되는 '9+3'이나 '6+2'로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서 역시 제도가 안착되기도 전에 변경을 논하기는 이르다는 판단이다.
나 대표는 "외부감사인은 기업 재무제표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소신에 따라 감사의견을 표명할 책임을 지닌다"며 "하지만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실시되기 전엔 이해관계로 얽힌 탓에 이 소명을 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악순환에 따른 회계품질 저하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걸쳐 건전성을 갉아먹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촉발한 국가 신뢰도 저하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나 대표는 소유과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한국 고유의 기업 지배구조하에서 감사인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시작이자 마지막 보루가 2020년 주기적 지정제라고 판단했다. 국내 기업들의 거버넌스 문제가 여전한데 감사 강도만 느슨하게 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 반발은 거세다. 개별 기업을 넘어 기업단체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금융위원회에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폐지해달라는 의견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착관계 방지 등 독립성 강화에 치중돼 감사품질이 떨어지고 기업 부담만 증가하는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나 대표는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편승해 감사보수가 높아지고 절차가 엄격해져 기업경영이 힘들다는 명분을 내세운 제도 폐지 주장도 있다"며 "그러나 감사보수 인상은 제대로 된 감사 수행을 위해 요구되는 감사시간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맞받았다.
그는 이어 "감사보수는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발걸음을 뗐을 뿐이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되레 하락한 상황"이라며 "주요 외국 사례와 비교해도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 대표는 "충분한 감사시간을 투입하는 동시에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회계사 교육훈련과 내부 품질관리에 힘써야 할 것"이라며 "회계법인끼리도 보수가 아닌 품질 경쟁을 벌여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나 대표는 감사인 '갑질' 문제가 일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봐주길 당부했다. 감사환경이 달라진 만큼 어느 절차 하나 허투루 처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감사인은 감사 대상회사를 위한 재무제표 작성, 회계처리 자문 등이 금지되는 등 과거보다 강화된 독립성이 요구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할 경우 구속은 물론 무기징역까지 감당해야 하는 만큼 어느 때보다 감사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세세히 점검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