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 탈출기 #15] "주주 행동 이끈다"
'행동주의 펀드' 이해하기
[파이낸셜뉴스] 주주 행동주의 :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배당금이나 시세차익에만 주력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부실 책임 추궁, 구조조정, 경영 투명성 제고 등 경영에 적극 개입해 주주 가치를 높이는 행위 등이 이에 속한다.
요새 증권 기사를 보다 보면 '주주 행동', '행동주의 펀드'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보셨을 거에요. 최근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한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행동주의'가 큰 주목을 받고 있죠. 심지어 행동주의 펀드와 관련한 테마주가 형성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네요. 하지만 주주 행동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곳은 많지 않죠. 이번 시간에는 행동주의 펀드가 무엇인지, 기업과 우리 증시에 정말 좋은 건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주주) 행동주의, 대체 뭐죠?
'행동주의 펀드'에서 '(주주) 행동주의'는 주주가 적극적으로 '행동'하자는 주장이에요. 회사에 투자하고 주식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더 발전하기 위한 대책을 요구하자는 거죠. 행동주의 펀드는 이러한 행동주의를 통해 주주 가치를 높이는 펀드를 의미해요.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가치를 개선하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해요. 먼저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 주식을 사들이며 지분을 확보해요. 그렇게 일정 수준 이상의 주주에 올라 의견을 갖고, "이 기업의 주가가 오르기 위해선 이 문제를 꼭 해결해 주세요"라고 주주 제안을 합니다. 주주 제안의 주제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자사주 매입 △배당금 확대 등이에요. 이런 요구에 기업이 응하고 기업의 가치가 오르게 되면 행동주의 펀드는 오른 주식을 팔고 수익을 내게 되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도 지금은 하이브와 카카오의 경영권 분쟁까지 왔지만, 처음에는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 제안'으로 시작했어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에스엠에 "대주주이자 총괄프로듀서 이수만씨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에 너무 많은 로열티(인세)를 주고 있다"라며 '지배구조 개선'을 지난해 요구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여기에 에스엠의 이사진이 반응했고, 지금의 사태에 이르게 됐습니다.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제안, 주주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하거나, 소송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요. 심지어 기업 경영진을 바꾸는 일도 있어요. 실제로 지난 2017년 미국에서는 포드자동차, US스틸, 야후 등 10여개 기업의 최고 경영자(CED)가 행동주의 펀드에 의해 교체되기도 했어요.
주식 침체기에 더 활발해진다?!..."Yes"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정말 활발해졌어요. 기업지배구조 조사업체 인사이티아(Insightia)에 따르면 2018년 16곳을 기록했던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대상 기업은 2021년 27곳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엔 47곳으로 늘었다고 해요. 4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죠. 미국의 투자은행 라자드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가 진행한 캠페인 수는 235건으로 지난 2018년 249건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은 주식 침체기에 더 활발해진다는 주장도 있어요. 애초부터 주주 행동주의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게 대공황 직후인 1932년이거든요. 뉴욕시 통합가스회사의 주주총회에 참석한 루이스 길버트는 기업이 주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이후 주주총회장을 다니며 기업 경영진에게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곤란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을 주주 행동주의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닷컴 버블로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던 2000년대 초에도 기업의 감시자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주주 행동주의가 다시 주목 받았죠. 행동주의 캠페인이 가장 많이 벌어졌던 2018년에도 미중 무역전쟁과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에 세계 경제와 증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에요. 국내에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한 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라고 해요. 자본시장을 개방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을 노린 헤지펀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리고 코스피 시가총액의 4분의 1이 증발됐다는 지난 2022년에도 행동주의 펀드의 행보는 활발해졌죠.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경기침체와 증시 부진의 영향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헤지펀드들이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기 수월해진다"며 "주주 행동을 추진하면 주가가 상승한다는 걸 알아차린 헤지펀드들이 이를 투자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어요.
기업 사냥꾼 아냐?!..."글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행동주의 펀드는 물론 사모펀드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가 좋지 않죠. ‘기업 사냥꾼’ 이미지 때문이에요. 특히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기업을 헤집어 놓고 떠나는 사태를 본 탓에 나이가 좀 있는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불신의 대상이죠.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때,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분할·합병할 때, 미국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반대하며 경영 개입을 시도한 게 대표적입니다. 특히 2003년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이 SK 지분 15%를 확보해 최태원 회장 등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한 일도 있습니다.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오른 사이 소버린은 2년 만에 약 1조원의 수익을 거두고 홀연히 떠났죠. 이 시기부터 행동주의 펀드라 하면 '기업사냥꾼', '먹튀' 이미지가 강해졌죠. 그러나 현재의 움직임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많아요. 국내 증시가 선진국에 비해 저평가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에요. 실제로 지난 7일 골드만삭스는 ‘기업 지배 구조와 주주 제안에서 오는 기회들’이라는 제목의 한국 증시 현황 보고서를 통해 “최근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 개선책과 주주 제안 등이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특히 개인 투자자와 행동주의 펀드가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 개선을 ”고 말했어요.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 확대는 분명 증시에 긍정적이다”며 “현재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기업의 공정한 운용 시스템)가 나쁜 상태이기 때문에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이를 개선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행동주의가 찍으면 오른다?!..."No"
주식을 투자하는 입장에선 '주식만 오르면 장땡'이라고요? 실제로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한 주식들이 급등하면서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은 것도 사실이에요.
에스엠의 주가도 얼라인파트너스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지난해 2월 이후 130%대 올랐다고 해요. 1년 가까이 6만~7만원 선에서 횡보하던 에스엠의 주가는 지난 달부터 급등하기 시작해 15만원을 넘어섰죠. 최근에 강성부펀드(KCGI)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오스템임플란트도 13만원대에서 19만원(2월 27일 기준)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KB증권은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행동에 나선 16개 종목의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이들 종목은 지난달 말까지 코스피지수 대비 평균 15.9%포인트의 초과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한 모든 기업의 주가가 오르지는 않아요. SK케미칼의 경우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행동에 나선 지 1년이 넘었지만 주가는 오히려 13만원대에서 8만원대로 40% 가까이 하락했다고 해요. KT&G도 지난해 말부터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제안을 해왔지만, 주가는 반짝 상승 후 8만원대 후반으로 복귀한 상태죠.
SK케미칼과 KT&G의 주주 행동을 이끌고 있는 안다자산운용의 박철홍 ESG투자본부 대표는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한 기업은 경영권 분쟁과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 경우가 많다"며 "우리는 대주주를 적대적으로 대하기보다 회사를 단계적으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관련 기업 주가의 단기 급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죠.
실제로 에스엠도 얼라인파트너스가 주주행동을 시작한 지난해에는 주가가 지지부진했어요. 그러다가 카카오와 하이브 등이 인수전에 참여하고 두 기업이 주식을 공개매수하면서 주가가 급등한 거죠.
행동주의 펀드가 백기사로 남으려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수도 늘어나고 관심도 커지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갈림길에 섰다는 평가가 많아요. 주주 행동주의 자체는 좋지만, 국내 기업과 투자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성격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문가들은 "시장이 경영권 분쟁과 단기 차익에 대한 기대감 만으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행동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장기적 안목으로 봐야 한다"라고 짚기도 해요.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당장 주가가 오르면 행동주의 펀드가 성공한 것이고 떨어지면 실패한 것이 아니다"며 "에스엠의 주가도 경영권 분쟁이라는 변수가 사라지면 조정을 받을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성과는 짧아도 1년, 길면 3~4년의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라고 조언합니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도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과 기업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를 맞추는 것이 행동주의 펀드의 목표"라며 "대주주와 일반주주 간의 이중가격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행동주의 펀드가 해야 할 일은 굉장히 많다"고 충고했어요.
이번 기사는 지난 2021년 발표한 김화진 서울대 교수의 주장으로 마무리지으려고 합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시대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와 기관투자자의 연대가 심화할 것이다. 기업은 주주가치 경영과 사회적 가치 경영을 계속하면 된다. 기업 스스로 주주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행동주의를 포함한 외부 세력에 의해 강제로 지배구조를 개편당하게 될 것이다.
” 행동주의펀드가 기업을 흔드는 건 맞지만 그 빌미를 제공한 건 결국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기업이라는 얘기다.
여러분들은 행동주의 펀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도 열심히 공부해서 주린이를 탈출해 봅시다!
※주식에 1도 관심 없던 기자가 증권부로 왔다. 재테크의 설렘을 갖고 부서에 왔지만, 기사에는 온통 ‘주식시장이 휘청인다’고 난리다. 주린이의 재테크 초보 벗어나기 프로젝트! 저랑 주린이 탈출하실래요?
hippo@fnnews.com 김찬미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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