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 톺아보기
철학자 김성환이 소개하는 영화관에 간 철학
선택의 순간, 영화 속 주인공들의 고뇌
인간의 원초적 심리로 친근하게 풀어
'우린 이성의 동물인가 감정의 동물인가'
철학적 접근 통해 물음의 답 찾아
영화관에 간 철학 / 김성환/ 믹스커피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철학을 모르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고, 영화를 모르면 인생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프랑스에서는 일찍이 1911년에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문학, 공연에 이어 영화를 제7의 예술로 정했다. 창조하고 표현하려는 인간의 주요한 활동 중 하나로 영화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지난 세기 영화는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발전했고 영화를 즐기는 한편 영화를 보는 방법론 또한 무수히 많아졌다. 과학, 경제, 역사, 미술, 심리학, 철학, 수학, 미학 등으로 접근해 왔다.
철학이 영화를 지나 인생과 세상에 다다르는 와중에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한편 가장 효과적인 철학 공부가 다름 아닌 영화 감상이기도 하다. 일련의 영화와 철학 개념 그리고 철학자가 하는 말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에 도달해 있다. 영화와 철학이 따로 또 같이 미래, 사랑, 재미, 관계, 정의의 키워드에 맞닿아 있고 적절한 곳에서 맞닥뜨리며 상호를 보완해주는 것과 같다.
영화와 철학을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철학적 문제는 '인간이 이성의 동물인가, 감정의 동물인가'의 여부다.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이면서 남다른 철학의 소유자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그의 사상과 철학 집약체라고 불리는 '배트맨' 3부작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정의의 개념을 차근히 규정해나간다. 도시의 다크히어로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펼치게 된 '다크나이트'는 관객에게 '죄수의 딜레마'를 간접적으로 체험케 한다. 작중 악당 조커는 시민과 죄수라는 선·악의 양극단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관객이 사건에 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다.
이는 극의 안과 밖 모두의 심리적 상황에 개입해 정의로운 선택을 강요케 했다. 결국 급박한 상황 속 악의적인 장난질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양심이라는 정의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배트맨 시리즈 속에서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이마누엘 칸트의 '법칙론', 로버트 노직의 '자유지상주의', 존 롤스의 '평등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마이클 센델 자신의 '공동선' 이론까지 모든 철학적 개념을 가져와 표현했다는 점이다.
특수한 상황을 직접 선택해야 하는 순간도 역시 철학적 고뇌의 일환이 된다.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삼은 '매트릭스'에서는 이를 재현한다. 만약 내 앞에 파란 약과 빨간 약이 있으면 나는 어떤 약을 선택할까? 파란 약을 먹으면 각성 체험의 세계 속에서 산다. 빨간 약을 먹으면 환각 체험의 세계로 떠난다. 역시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빨간 약이다. 이는 주인공이 빨간 약을 선택하기 전이든 이미 선택해버린 후이든 계속 품고 있는 물음이다. 인간이란 '물음'을 포기할 수 없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자기 정체, 다른 말로 '자의식'이다.
빨간약을 선택하며 시작된 영화는 인간이 감정의 동물임을 증명한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 네오는 매트릭스라는 가상 세계를 만든 아키텍트가 인류를 구하는 오른쪽 문과 사랑하는 트리니티를 구하는 왼쪽 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왼쪽 문으로 향한다. 반대로 '매트릭스 레볼루션'에선 마치 예수처럼 자기 목숨을 바쳐 인류를 구원고자 한다. 연인과 인류라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 작용한 주인공의 선택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성 충동, 에로스와 죽음 충동, 타나토스를 가지고 있다고 정의했다.
동시에 불편한 기억은 피하려는 게 인간의 원초적 심리로 설명한다. 영화로 보자면 트리니트를 살리기 위한 네오의 결단, 스미스 요원과 오라클의 관계, 아키텍처로 설명되는 매트릭스를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라고 말이다.
김성환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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