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

[특별기고] 위원회 정비, 효율적인 정부 운영의 바로미터

[특별기고] 위원회 정비, 효율적인 정부 운영의 바로미터
전공이 행정학이다 보니 정책자문이나 심의 등을 이유로 다양한 정부부처의 위원회에 종종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임명장만 받고 한 번도 소집되지 않거나 약식 서면회의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위원회는 정부의 정책 결정과 집행단계에서 외부전문가의 참여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위원회를 적절히 운영하기만 한다면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게 수많은 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식물위원회'로 남아있다. 작년 한 해 동안 회의를 한 번도 개최하지 않은 위원회가 80개에 달하고, 구성하지 않은 위원회는 40개가 넘는다고 한다. 어쩌다 개최하는 회의조차 위원회의 의결을 거쳤다는 요식행위로 개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정부위원회 중 운영실적이 저조하고 불필요한 위원회 245개를 통폐합하는 위원회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비슷하거나 유사한 위원회는 합치고, 유명무실한 위원회는 과감히 없애 정부개혁을 추진하자는 위원회 정비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현재, 계획대로 정비를 완료한 위원회는 40개에 불과하다. 정비를 완료한 위원회는 존속기한이 만료하여 자동 폐지되거나 대통령령 등 법령 개정을 통해 정비한 것이다. 나머지 대다수 위원회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여, 지난해 9월 일괄개정법률안 32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논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국회에 계류 중이다. 32개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겨우 2개로, 그마저도 하나는 세입예산안 부수법률로 자동부의된 법안이다.

매년 운영실적 저조, 유사·중복, 필요성 감소 등 정비대상 위원회를 선정하여 통폐합 등 정비를 추진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위원회가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10년 전에만 해도 정부 위원회는 530개 정도 존재했으나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2년 말 기준으로 616개에 달한다. 위원회 제도를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위원회 정비를 추진하는 동시에 처음부터 불필요한 위원회가 설치되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정부 부처에서는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새로운 위원회를 설치하여 전문가를 새롭게 위촉, 회의를 개최하기보다는 기존에 유사한 위원회가 이미 설치되어 있다면 이를 활용하여 실질적인 자문을 구할 수 있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합리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의 위원회가 내실있게 운영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원회를 폐지, 통합하는 등 효율적 정비를 통해 예산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불필요한 회의를 줄임으로써 위원회 운영인력을 국민수요가 많은 업무에 배치할 수 있게 되어 국민에게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원회 정비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정부 운영의 바로미터이다. 국회가 법률 개정 심의에 박차를 가해야 비로소 효율적인 정부 운영도 가능해질 것이다.

나태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