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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윤 대통령의'사나이 외교'가 놓친것

[fn광장] 윤 대통령의'사나이 외교'가 놓친것
한국의 모든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많은 국내외 도전에 직면하지만 이번 윤석열 정부처럼 집권 초부터 '외교'로 인해 이토록 많은 논란을 야기한 적은 없었던 듯하다. 지난주 일본 방문에서 보여준 윤 대통령의 '통 크고 화끈한' 사나이 외교는 한국적 정서일 수는 있으나 명분, 콘텐츠, 디테일에서 모두 문제점을 드러냈다. 출국 전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것이라 믿고 싶다. 단,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압축적으로 서둘렀다. 일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촘촘하지 못했다.

한일 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면 안보는 안보, 경제는 경제, 민간은 민간, 역사는 역사로 분리해서 접근할 수는 없었을까. 미국이 가장 원하는 것은 한·미·일 안보협력이기 때문에 적어도 한일 간 안보협력 성과만 냈어도 미국은 환영했을 것이다. 민감한 역사 문제까지 모든 것을 하나의 바구니에 다 담으려다 오히려 한일 관계개선에 '역효과'를 내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일본을 비판하기 어렵다. 국제관계에서는 권선징악 드라마 '더 글로리'보다는 사내 정치 드라마 '하얀 거탑'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일본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강제할 수 없다. 일본의 변화를 기대했다면 애초부터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일본은 자국의 국익대로 움직일 뿐이다. 정부측 말마따나 가만히 있던 일본에 우리가 먼저 나서서 일본이 희망하던 방안을 제안했고, 일본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을 뿐이다.

삼일절 경축사에 이어 한일 정상회담, 4월 한미 정상회담,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가 예상되는 가운데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정부의 계획 안에 있었다. 윤석열 보수정부가 정권을 잡은 이상 이제 한·미·일 안보협력은 '답정너'이다. 그동안 아쉬웠던 2%를 착착착 채우는 한국이 미국은 대단히 만족스럽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입장에선 팔십 나이에도 윤 대통령을 업고 다닐 판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입장에선 저녁 식사를 세 번이라도 대접할 만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이 모든 것은 내 책임'이란 결연한 의지를 보이면서, 수세적일 수밖에 없는 정상회담에 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우선적으로 꼽지만 기실 한일 관계의 초고속 복원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한 듯하다. 한·미·일 협력을 위해 한일 관계개선이 필요한지, 한일 관계개선을 위해 한·미·일 관계를 강화하는지 알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때나 이번 윤석열 정부나 기본적으로 동맹 중시 DNA는 같으나 이번 정부 들어 일본 친화적 DNA로 형질전환이 있어 보인다.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향후 주목해야 하는 점들이 있다. 첫째, 일본이 우리가 기대하는 물잔의 절반을 채울 수 있을까이다. 오히려 우리의 사나이 외교에 일본은 살라미 외교로 대응할 듯싶다. 그나마 여러 번 나눠서라도 채워지면 다행이다. 둘째, 야당의 대일 정책은 무엇일까이다.
반일 비판은 속을 시원하게 할지 모르지만, 전 세계의 안보·경제 복합위기 속에 한일 관계의 지향점과 정책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셋째, 정부는 주고받기식 협상 대신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고 했는데, 그럼 역시 꽉 막혀있는 한중 관계에도 동일한 발상을 적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결국 사나이 외교가 기개인지 만용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