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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백과사전] 유엔성냥

[레트로 백과사전] 유엔성냥
과거 국내에서 생산되던 성냥들. 그중 팔각형의 유엔성냥(왼쪽 세번째)이 가장 눈에 띈다.

"인~천의 성냥 공장, 성냥 공장 아가씨~" 이런 가사로 시작하는 군가풍의 구전가요가 있다. 1940년대 일본 해군 군가가 해방 후 가사만 바뀌어 군대 내에서 불려졌다는 설이 있지만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노래 가사를 통해 과거 인천 지역에 성냥 공장이 많았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 공장은 1917년 일본인들이 인천 제물포(지금의 금곡동)에 세운 조선인촌회사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회사에서 만든 쌍원표(雙猿票·성냥곽에 원숭이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성냥은 한때 국내 성냥 소비량의 3분의 1을 점유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인천에 성냥 공장이 밀집해 있던 이유는 주로 수입에 의존했던 인(燐)과 목재의 수송이 용이하고, 무엇보다 경성(서울)이라는 거대시장을 배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주로 여공들이 성냥 제조에 동원됐기 때문에 '인천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랫말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전 최고의 성냥 브랜드가 조선인촌회사의 쌍원표였다면 해방 후엔 대한성냥과 유엔성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특히 유엔성냥은 당시 네모 반듯했던 사각형 성냥곽의 틀을 깨고 외형을 팔각형으로 바꿔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밖에도 아리랑(조일산업), 향로(성광성냥), 기린표(경남산업), 비호표(대림성냥), 비사표(남성성냥), 비마표(조양성냥) 같은 제품이 시중에 유통됐다. 그 시절 팔각형 유엔성냥은 양초 세트와 함께 집들이·개업식 선물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당신의 앞날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길 기원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유엔성냥의 전성기는 길게 잡아봐야 1980년대 초반까지다.
80년대 이후 일회용 가스라이터 '불티나'가 시중에 나오면서 (좀 과장하자면) 성냥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생산 물량을 줄여가면서 근근이 버티던 성냥 공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지난 2017년 기린표 성냥을 생산하던 경남산업이 마지막으로 폐업하면서 국내 성냥 생산은 완전 중단됐다. 지금 인터넷에서 살 수 있는, 유엔성냥을 포함한 모든 성냥은 100% 중국산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