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모태기업은 선경직물로 1939년 조선의 선만주단과 일본의 경도직물이 합작해 세웠다. SK그룹 창업자인 고 최종건 회장은 18세에 선경직물 사원으로 들어가 6·25 때 잿더미가 된 회사를 인수, 대재벌의 주춧돌을 놓았다. 최종건이 1955년 빨면 줄어드는 양복 안감의 단점을 개선해 내놓은 '닭표안감'은 전국산업박람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날개 돋친 듯 팔렸다. 2년 후 발매된 화려한 문양의 '봉황새 이불감'은 예비 신부에게 인기가 높아 출시 3개월 만에 요즘 아파트처럼 웃돈이 붙어 거래될 정도였다.
그는 1958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한 데 이어 데도론, 크레폰, 앙고라, 깔깔이, 양단, 뉴똥 등 새로운 직물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잘 구겨지지 않고 때가 잘 타지 않는 이 화학섬유들은 무명 옷을 빨아 다리미로 다리느라 생고생을 했던 당시 여성들에겐 '복음'과도 같았다. 선경직물의 첫 광고(사진)는 1965년 8월 29일자 신문(조선일보)에서 확인된다. 시중에서는 데도롱, 데드롱, 데도론 등으로 불리던 테토론(tetoron)이다. 테토론은 나일론보다 덜 질기지만 더 가볍다. 테토론에서 업그레이드된 섬유가 폴리에스터이며 테토론도 폴리에스터의 일종이다. 중소기업이던 선경직물은 수출전선에 뛰어들었다. 예고 없이 선경직물을 방문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이 "앞으로 수출을 해보시오!"라고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일본 무역상이 제품에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이라고 써달라는 요구도 했다지만, 1962년 4만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은 1969년 833만달러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원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던 선경은 1960년대 말 꿈에 그리던 원사 공장을 짓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나갔다. 명실공히 '한국의 섬유왕'이 된 최종건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첫걸음이 정부 소유의 워커힐 인수였다. 박정희는 최종건에게 세계 최고의 호텔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최종건의 꿈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석유업 진출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폐암을 얻었다. 투병 중에도 선경석유를 세우는 집념을 보였지만 1973년 11월 4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은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을 설립함으로써 형의 꿈을 대신 실현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기자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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