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은 개인 후불적 임금 성격
강제할땐 노후자금 외 기능 상실"
정치권 추진 의무 연금화에 반대
중도인출 허용 등 완충장치 필요
정치권에서 띄운 '퇴직금의 의무 연금화'를 두고 비판적 평가가 나온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가 경과보고서에까지 그 내용을 담으며 추진했으나 학계와 법조계에선 '현실성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강제할 경우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고, 노후자금 이외의 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이유다.
■정치권이 띄웠으나 '글쎄'
3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 나온 '퇴직금의 연금화' 제안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에선 "제도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민간자문위가 논의를 거쳐 '연금개혁안 검토 현황' 보고서를 지난달 29일 제출했지만 회의론이 여전하다. 보고서는 "퇴직금을 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현행 퇴직연금 제도가 높은 비용부담(평균소득의 8.3%)에 비해 제대로 보완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가입 비중은 절반을 가까스로 넘고, 계좌 수 기준으로 일시금 수령 비중이 95.7%(2021년)에 달한다.
올해 1월 연금특위 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이 해당 내용을 언급했고, 이보다 앞서 지난해 5월에는 안호영 민주당 의원이 전 사업장에 근로자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일괄 의무화는 법적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판단이다. 연금화의 기본이 되는 퇴직금 일시금 수령 및 중도 인출 금지를 강제할 경우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퇴직금을 공적연금이 아닌, 개인의 후불 임금 성격으로 해석하고 있어서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퇴직금을 근로자가 퇴직 후 받을 수 있는 채권이 형성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대법원도 퇴직금을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계속근로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후불적 임금의 성질을 띤' 금원으로 판결한 바 있다.
최강용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퇴직금은 근로자가 퇴직 후 받을 수 있는 권리로, 이 같은 채권을 제한하면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법으로 강제할 경우 헌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퇴직금을 이연된 근로자의 개인 후불임금이라고 본다면 법적으로 재산권 행사 등 문제가 걸릴 수 있다"며 "공적 연금화를 위해서는 퇴직금을 공적연금 성격으로 전환하거나 개인 후불임금이 아닌, 공적연금으로 해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퇴직연금은 노령연금으로서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2021년 총 19만6685명이 퇴직연금 중도 인출을 했다. 주택 구입(8만1019명), 장기요양(5만8266명), 주거 목적 및 임차 보증금(4만7077명), 회생절차(2만706명) 등이 주된 사유다.
이상은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퇴직금은 가족 부양, 주거 목적 등 복합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며 "특히 한국은 자발적 실업에 대한 실업급여를 제공하지 않아 이직·자기개발 등 사유로 그만두면 당장 생계에 쓰기 위해 퇴직금을 인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퇴직 후와 노령연금을 받게 되는 시기의 간극도 인출 사유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완충장치는 필요
공적연금화가 불가피하단 의견도 존재한다.
다만, 완충장치를 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전액 중 반액은 중도 인출을 허용하거나 주택 구매 등으로 퇴직금을 사용한 이들의 경우 집을 팔면 회수하는 등 적극적 완충장치를 고려해야 한다"며 "연령별 상황을 고려, 연금이 필요 없을 수 있는 40~50대는 일시금을 허용해주고, 특정 연령 이하부터만 적용하는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재우 연구위원도 "급진적으로 개혁할 문제는 아니다"며 "퇴직연금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해외 사례 등도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ippo@fnnews.com 김찬미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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