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키스' 초연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의 소동극이 느닷없이 끝난다. 황당한 전개에 어이없을 무렵 연출자와 배우들이 커튼콜을 하러 나온다.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진 후 연출자가 그렇게 연락이 안 닿던 원작자와 극적으로 전화연결이 됐다며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다. 예고없이 전개된 일종의 관객과의 대화에 히잡을 쓴 젊은 여성이 나타난다. 그녀는 2011년 발발해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 한복판에 있다.
배우들의 질문과 원작자의 답은 반전의 연속이다. 지금까지 관극한 네 남녀의 연애 이야기는 전혀 다른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임이 속속 드러난다. 동시에 이런 막장드라마를 낄낄거리며 볼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을 떠올린다. 생과 사가 오가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이런 막장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생각한다.
예술작품은 그것이 탄생한 사회정치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그것을 떼놓고 본다면 얼마나 다른 감상과 해석이 가능한지 연극 '키스'는 여실히 보여준다. 동시에 연극이 다루는 내용뿐 아니라 그 예술이 창조되는 방식 그리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까지 두루 아우르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복잡함과 다양성을 환기시킨다.
연극 '키스'는 아침드라마처럼 통속적이다가 서늘하게 허를 찌른다. 칠레 출신의 국제적 극작가 기예르모 칼데론의 국내 초연작으로 날카로운 반전이 백미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제대로 '신선한' 뒤통수를 맞게 된다.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어느 가정. 오랫동안 서로 알고 지내던 두 젊은 커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딜'의 집에 모여 TV 드라마를 보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뜻밖의 사랑 고백과 때 아닌 청혼, 그리고 한 번의 키스가 이어지며 상황은 온통 난장판으로 치닫는다.
연극 '버닝필드'를 통해 기발하고 신선한 연출을 보여줬던 차세대 연출가 우종희는 "'키스'를 처음 읽었을 때 놀라움과 신선함 그리고 흥미로운 구성에 감탄했다"고 돌이켰다.
"사실과 비 사실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연출할 수 있는 공연이다.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몇 년 전 직접 초벌 번역까지 했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상황 속 삶의 소중함, 다른 문화권에 대한 시선, 더 나아가 예술을 창작하고 공유하는 방식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고 연출 소감을 전했다.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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