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및 시민사회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정부와 정치권에서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갭투자가 기승을 부렸던 2021년에 체결된 전세는 올해 순차적으로 만기가 돌아온다. 전세사기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발단은 어디에 있을까.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전세대출 확대가 도화선이 됐고, 임대차 3법이 전세시장을 더욱 왜곡시킨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셋값 폭등시킨 '새 임대차법'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세제·금융 혜택을 드리니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시면 좋겠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이 지난 2017년 8월 청와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의도는 좋았다. 다주택자를 제도권으로 흡수해 임대시장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임대사업 장려는 전문적인 갭투자자 양산, 다주택자 급증이라는 원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수많은 대책을 쏟아내던 문 정부는 2020년 7월 31일부터 임대차 2법도 시행했다. 이 법의 목적도 물론 임차인 보호다. 앞서 문 정부는 셋집 마련을 돕기 위해 전세대출상품 문호를 확대했다. 새 임대차법과 맞물리면서 전셋값이 폭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2020년 7.32% 상승하더니 다음해에는 9.61% 폭등했다.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 4년치를 일시에 올려 받았다.
아파트 전세가가 치솟으면서 서민들은 빌라, 오피스텔 등 아파트 대체제로 옮겨갔다. 이창무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로또 아파트 청약을 목적으로 빌라에 전세를 사는 사람이 늘면서 전세가격이 매매가에 육박하는 시장 왜곡이 발생했는데 상황만 더 악화 시켰다”고 말했다.
2020년과 2021년 빌라 전세가비율은 평균 70%대다. 갭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론적으로 30%의 자기자본만 들이고 임대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자본 갭투자, 마이너스 갭투자 등 돈 한푼 들이지 않는 갭투자가가 빌라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시내 한 아파트에 전세사기 피해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사진=뉴스1
정상적인 집주인도 ‘전세 사기범 된다’
최근 전세사기가 빌라, 오피스텔 등 아파트 대체제에서 불거진 것도 이와 같은 연유다. 빌라·오피스텔은 주거 안전성이 낮은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세 수요가 일시에 급증했고, 이를 겨냥한 고위험 갭투자가 몰려든 결과다,
최근 '무자본 갭투자'로 수도권 다세대주택을 사들인 뒤 140억원대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이른바 '30대 빌라왕'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문제는 전세사기가 전방위로 확산될 여지가 적지 않다는 점. 매매가와 전세가격 하나만 올라도 갭투자가 버틸 수 있는 데 지금은 동반 하락하고 있어서다. 빌라서 시작된 전세사기가 아파트까지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올 1월~3월 전국 아파트값은 4.75% 하락했다. 전셋값은 이 기간 동안 7.39% 떨어지졌다.
국토부가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갭투자 현안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아파트 값의 70% 이상을 전세보증금으로 충당한 건수가 2020년 2만6319건에서 2021년 7만3347건으로 178% 급증했다. 2021년에는 10채중 1채가 깡통전세 거래였다. 보증금이 집값의 70% 이상이면 ‘깡통전세’로 분류한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 특임교수는 “정상적으로 세를 놓고 있는 집주인조차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전세 사기범이 될 수 있다”며 “역전세난에 집값 폭락이 나타나면서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이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발단은 과거 정부의 정책이 크지만 현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전세난 경고음이 수차례 울렸지만 소극적인 대책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ljb@fnnews.com 이종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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