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전기차·이차전지 등
국가간 '쩐의 전쟁'으로 치달아
얼마나 지원해주느냐가 관건
'민간주도'만으론 성장 한계
전문가 "정책으로 투자 뒷받침"
외교·통상 복합대응 강화 조언도
"현재 글로벌 경쟁상황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3월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을 발표할 당시 발언이다.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등 첨단 주력산업 분야가 '국가대항전'으로 치달으면서 취임 1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와 산업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대중 포위망 구축을 앞세워 노골적으로 첨단산업 유치에 나선 상태다. 윤 대통령의 발언도 사뭇 달라졌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라는 정권 초기의 구호는 이미 "정부와 현대차가 원팀으로 뛰겠다(지난 3월 울산공장)"는 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민간주도 성장을 넘어 국가대항전의 시대에 생존을 위한 새로운 산업정책 어젠다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환경 개선…무너진 공급망 복원
8일 재계에 따르면 윤 정부 1년간 반도체 등 첨단산업들이 최대 혜택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정부의 '6대 첨단산업·전국 15곳 특화 단지' 발표가 대표적이다. 업계에선 미국 등 주요국들의 반도체·모빌리티 등 경쟁에서 한국의 산업기반을 최소한이라도 유지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로 보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을 생존 문제로 규정했다.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한국의 반도체 등 첨단산업 기반을 지키기 위한 경제안보의 인계철선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미국의 칩스법(520억달러·68조원)에 이어 일본의 반도체굴기 전략(TSMC 일본 반도체공장에 투자비 절반 부담), 유럽판 칩스법(430억유로·약 62조원) 등 주요 선진국들은 막대한 화력을 반도체산업에 쏟아붓고 있다.
6대 첨단산업 특화단지 전략에 따라 정부는 2026년까지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미래차, 바이오, 로봇 등 미래먹거리 산업 6대 분야에서 총 550조원의 투자를 유도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에 부응해 향후 20년간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30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법인세 1%p 인하와 이른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을 통한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조세지원책 마련도 지난 1년간 윤 정부의 대표적 성장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칩스법에 이어 7개월 차로 한국판 칩스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글로벌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엔 대기업 세액공제를 6%에서 8%로 확대하는 방안이 담겼는데, 윤 대통령의 지시로 대·중견기업의 경우 혜택이 15%까지, 중소기업은 25%까지 높아졌다.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금액 대비 투자 증가분에 대해서는 올해에만 10%의 추가 공제(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이에 따라 대기업 등은 최대 25%, 중소기업은 35%에 달하는 투자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밖에 대미외교 강화, 한일 경제협력 기반 복원, 원전생태계 복원, 불법파업에 대한 엄정 대처도 지난 1년간의 성과로 꼽힌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의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외교를 통한 양국의 유대관계 강화는 다행스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규제 풀고 통상·외교로 복합 접근해야
반면 각국 보호무역의 여진과 충격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 대한 규제도 계속해서 풀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징벌적 처벌조항 역시 기업 투자환경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국제정치·경제 지형이 펼쳐지고 있다"면서 "외부변수, 국제환경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며 산업·경제정책뿐만 아니라 외교·통상 대응도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 전 부총리는 "이와 동시에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기업 투자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국제경쟁력연구원 이사장)는 "최근 수출상황만 가지고 무역의 관점만 부각시키고 있다"며 "국내기업 투자는 물론이고, 외국기업이 국내 투자하도록 투자환경을 정비해야 훨씬 더 단단하게 성장의 틀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전통제조업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빅테이터, 클라우드, 디지털 테크놀로지라는 일명 'ABCD' 분야의 보다 근본적인 기술경쟁에 올라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소야대 구조가 경제개혁 정책 추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세돈 교수는 "여소야대 구조에 내년 총선 이슈가 맞물리면서 개혁정책이 미뤄지고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최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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