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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언론인은 의사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기자수첩] 언론인은 의사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 "언론인은 의사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으로부터 받은 메일 말미에 적혀 있던 문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 보도가 쏟아지는 요즘, '국민의 알 권리'를 핑계로 언론인들은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했는가. 최근 연이어 발생한 자살 사건을 많은 언론사가 보도했다. 물론 기자도 편승했다. 아마 대부분 기자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다른 데서도 다 쓰니까' 처리할 수밖에 없는 가치가 높은 뉴스가 돼버렸다.

뉴스의 파장은 크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17∼24일 하루 평균 청소년 자살 관련 신고는 같은달 1∼16일에 비해 30.1% 증가했다. 16일은 한 여고생이 강남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투신을 생중계했다는 보도가 나온 날이다. 이제 베르테르 효과(유명인 모방 자살)는 꼭 유명인에 대한 보도에서만 국한돼 일어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 현장 경찰들도 부쩍 많아진 자살 신고를 체감한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기자에게 "관련 사건들이 보도되고 자살 신고가 최소 2배는 늘었다"며 "언론인들도 보도에 있어서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 좋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우울한 사회다. 지난 2021년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특히 10대 사망원인에서 자살 비중이 43.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자살 사건 보도로 숨어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전염된 우울함이 앗아간 생명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제 언론인들의 합의가 필요한 때다. 언론의 영향력이 바닥에 떨어졌다고 말한다.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하지만 아직 기자들은 '의사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언론사가 자살 보도를 일제히 받아 적을 필요는 없다. 자살 상담 전화번호를 기사 하단에 작성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수준의 보도 지침이 필요하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