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월 2일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문재인 전 정부가 친중(親中) 행보를 했지만, 돌아온 것이 무엇인가"란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시 '혼밥' 논란은 중국으로부터 존중도,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이해된다. 이어 윤 대통령의 방미를 부정적으로 보도한 중국 언론과 주중 한국대사관 간 심한 설전이 있었다. 한국과 미·일 동맹들 간 수시 정상회담 개최와는 달리 한중 관계는 냉랭한 '개점휴업' 상태다. 이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되었지만 대중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가 미국에 올인하는 상황에서 한중 관계의 위상과 성격이 변하고 있다. 우리 외교의 큰 그림 안에 중국은 어디에 있는가? 지난 정부가 친중이라면 이번 정부는 반중(反中), 혐중(嫌中), 비중(非中)인가, 아니면 그래도 화중(和中)인가. 한국에 경제·안보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을 고려해 적어도 현상유지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 일본, 유럽 등 모두 각자의 국익에 기반한 대중정책이 있는데, 한국도 한국적 상황을 반영한 대중정책이 있어야 한다.
첫째, 우리 입장을 너무 조급하게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강대국들은 으르렁대다가도 손바닥 뒤집기를 잘한다. 1972년 7월 20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일본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지난 2월 초 중국 정찰풍선 사태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이 취소된 이후 3개월 만에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5월 11~1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전격 회동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며, 미·중이 적대적 관계를 전환한다면 우리는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
둘째, 자극적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지난 4월 27일 미국 의회 연설에서 윤 대통령의 장진호 전투 언급은 미국에 강하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 때문임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한미 양국 간 유대감을 강조할 수 있는 사건을 인용했더라면 나았을 것이다. 제3국이 관련된 논쟁적 사건 인용 시 언젠가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셋째, 민감한 사안들은 가능한 한 원칙 위주로 발언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남북 관계와 비교했다. 대만은 중국이 가장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사안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 그 이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힘에 의한 현상 변경" 같은 미국식 표현이 아니어야 한다. 한국식 외교 랭귀지를 개발한다면 민감성을 낮추고 자율성을 확보하며 국익 견지에도 유용하다. 그럼에도 중국이 우리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그때는 우리도 강하게 대응하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먼저 자극할 필요는 없다.
정부는 한일 관계 미래를 위해 통 큰 결정을 내렸다고 했는데 그럼 역시 한중 관계에도 같은 결정이 가능한가? 한일 관계에서 과감히 물잔 절반을 먼저 채웠듯 한중 관계에서도 물잔 절반까지는 아닐지라도 먼저 채울 수 있는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했던 것처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불고기를 대접할 수 있는가? 국익을 위해서라면 속이야 어떻든 웃으면서 할 수 있어야 한다. 혹 언젠가 방중해서 현지인들과 담소하며 식사하는 장면을 만들 의지가 있다면 향후 4년 한중 관계를 완전히 내려놓진 않아도 될 듯싶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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