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사진=서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전통사회에서 행복의 조건으로 여겼던 오복은 서경(書經) 홍범편에서는 수, 부귀, 강녕, 유호덕, 고종명라고 하였고, 통속편에서는 고종명 대신 자손중다 (子孫衆多)를 강조하고 있다. 오복을 갖추고 장수한 분은 당연히 선망의 대상이었고, 우리 선조들은 일상의 생활용구를 수(壽)와 복(福)자 문양으로 장식하였으며, 장수의 상징인 자연물로 태양, 산, 물, 돌, 구름과 생명체로는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을 그린 십장생병풍을 두었다.
이런 오복을 갖춘 대표적으로 실존한 인물이 ‘신당서’ 열전에 소개되어있다. 당 현종시대 장군으로 안사의 난을 평정하는 등 수많은 무공을 세워 부귀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당시에 85세의 수를 누린 곽자의(郭子儀)이다. 그에게 여덟 명의 자식과 일곱 명의 사위가 있었는데 모두 조정에서 귀하게 현달하였고 자식들이 번창하여 친손과 외손 합쳐 수십 인에 이르렀다. 곽자의는 부귀공명의 상징이 되었으며, 조선 시대 양반의 집에는 그를 닮고자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라는 병풍을 펼쳐두고 부러워하였다.
그런데 역사 속의 곽자의에 못지않은 오복을 갖춘 백세인들을 더러 만나게 되면서 그분들의 삶에 감탄과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9년도 여름 미국에 사는 막역한 붕우(朋友)가 빙장의 백수연에 참가하기 위해 귀국하였다. 내게는 중 고 대학까지 함께 수학한 몇 안 되는 친구이며, 미국에서 의사로 크게 성공하였고 얼마전 은퇴한 후에는 의료선교사가 되어 남해 벽지 섬들을 찾아 다니며 의료봉사를 하는 자랑스러운 친구이다.
그는 나에게 참고하라며 빙장인 백세인이 직접 저술한 책을 주었다. 책 제목이 ‘아직 100살밖에 안 먹었습니다만 (당신의 서재 2018)’이었다. 읽어가면서 흥미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의 존함은 남기동(1919-2020)으로 서울공대를 1회로 졸업하고 한양대에 최초 요업학과를 개설하였다. 고려양회와 쌍용양회를 건설하였고 인도네시아에도 시멘트공장을 세운 요업계의 태두이다.
남옹은 우리나라 시멘트산업을 세계5위강국으로 키워 국가건설의 기간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업적으로 서울대공대에서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선정되었다. 원래 일이나 취미에 몰입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자신이 정리하여 수장하고 있는 강의노트 만도 100권이상이었다.
남옹은 Talent (재능은 모두를 위해서) Training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Truth (진실 앞에 겸허 하라) Trying other’s shoes on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라) Together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Time (시간을 믿고 기다려라) Thanks (공경하고 감사하라) 등의 일곱가지 T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아왔다.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사진=서동일 기자
특히 ‘잘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 당할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 당할 수 없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는 공자님의 가르침을 신념으로 맡은 일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다. 해외 출장 경우에는 언제나 출국 두 달 전부터 회의에 필요한 모든 문장을 달달 외어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는 관계된 사람들에게 전설 같이 전해지고 있었다.
가정적으로도 매우 유복하여 96세에 소천한 부인과는 75년을 해로하였다. 자손으로는 3남3녀를 두었고 이중 5명이 의대를 나와 의업에 종사하고 있고, 손주13명(친손6. 외손7), 증손 23명을 두었으니 가히 다손중다의 복도 받았다.
남옹이 평생 지켜온 건강비결의 핵심은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 식보보다 행보(行步)’라는 걷기이다.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고 항상 걸었으며 백살 가까이 되어서도 송파구 자택에서 신촌의 세라믹총연합회관까지 지하철로 출근하였다. ‘죽은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앉아있는 동안에도 가만히 있지 않고 쉬지 않고 발가락이라도 꼼지락거렸다고 하였다.
놀랄 만한 사실은 내 친구의 부인인 남옹의 셋째 따님이 부친의 장수비결이라고 알려준 특별한 습관이었다. 바로 줄넘기였다. 젊어서는 매일 줄넘기를 오른발 1500번 왼발 1500번 도합 3000번을 하였고, 중년을 넘어서는 매일 2000번 그리고 여든살이 넘어서도 매일 1000번씩 줄넘기를 하였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 목적으로 일부러 헬쓰클럽을 찾지 않았고 바쁜 일정에도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는 줄넘기를 위해 항상 줄넘기줄을 가지고 다녔다. 바로 생활습관으로 건강장수를 다진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남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생의 상비약이 무엇이냐고 묻고 자신이 백살되도록 지켜온 상비약이 무엇일지 반문하곤 하였다. 사람들은 으레 어떤 특별한 가전의 비방이나 보약 또는 비타민 정도를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그분이 알려준 상비약은 엉뚱하게도 치약, 구두약, 모기약 세가지라고 하였다.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구강관리를 철저하게 하였고, 항상 걸어 다녀야 했기 때문에 구두관리를 세심하게 하였다.
그리고 외지고 벌레가 많은 시멘트공장이라는 현장에 살아야 했기 때문에 모기약이 필수품이었다고 하였다. 건강장수를 위하여 특정한 약이나 보약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관리를 위한 생활물품들을 갖추고 살아온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면서 평생 변함없이 부지런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살아가야 할 방법과 방향을 안내해주는 나침반이 아닐 수 없다.
백세인이 평생 살아온 일상의 삶이 바로 오복을 가져온 필요조건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복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하였다.
한국엔지니아클럽 행사에서 96세에 한 건배사에서 생활로 다져진 남옹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저는 겨우 아흔여섯밖에 안 먹었습니다. 내년에 또 봅시다” 그리고 남옹은 백세에 저술한 책의 부제를 “I am 100 years young”라고 하면서 젊은 백세인임을 자부하였다.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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