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일 년이 지났다. 밖으로는 숨 가쁜 신냉전 국제질서 전개에 전략적으로 대응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안으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만든 문재인 정권의 작폐(作弊) 청산이 더디다. 개혁이 혁명보다 힘들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윤석열 정부는 다수 야당의 방탄국회와 입법독재, 사법부의 선택적 정의 자행, 헌법재판소의 정치화 등 헌법기관의 저항이라는 '거대한 걸림돌'을 치워야만 한다.
바로 며칠 전에 터진 중앙선관위원회(선관위) 사태는 헌법기관 개혁의 문제와 직결된다. 선관위는 북한의 해킹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보안점검 권고를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더하여 선관위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이 포함된 고위직들이 벌인 '고용세습'의 문제가 불거졌다. 두 문제 모두 주요 헌법기관의 헌법적 책임성에 비추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오만과 타락'의 끝판이다.
사법부, 특히 대법원은 또 어떤가. 대한민국의 대법원장이 부하 부장판사가 국회로부터 탄핵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지병(持病) 사표를 반려하는 비정함, 이를 부인하는 거짓말까지 늘어놓고 국민에게 들켰다. 정의의 수호자가 한갓 '거짓말쟁이'로, 대법원장 공관(公館)에 아들 부부를 동거시키는 도덕적 타락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 쏟아지는 국민적 비난에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대법관이 대장동 사기꾼들의 천문학적 돈질에 판결(정의)을 판 것이 드러나도 대법원장은 여전히 특정 법관 무리의 우두머리로 '선택적 정의'를 남발하고 있다.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은 헌법재판소(헌재)를 설치하여 헌법수호에 만전을 기하려 했다. 그러나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판결을 기점으로 헌재는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정치재판소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작금의 헌재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의 수호에 추상같은 사법권위를 발휘하기는커녕 정치적 역학, 여론의 향배를 곁눈질한 기묘한 판결까지 내놓고 있다. 얼마 전 이른바 '검수완박' 권한쟁의 판결이 대표적이다. 헌재는 이를 "절차는 위법이나 법안 통과는 무효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논리가 생명인 사법판결이 인과(因果)가 유리(배치)된 비논리로 구성되었다. 실소(失笑)가 앞선다.
온갖 대형 범죄에 연루되고 기소된 이재명이 국회를 소도(蘇塗)로 삼았다. 거대 야당은 입법을 담당한 헌법기관의 본분은 망각한 채, 범죄혐의자의 방탄조끼를 자처하고 있다. 대표 선거의 돈 봉투 돌리기, 젊은 의원의 코인 스캔들엔 꼬리 자르기 꼼수로 쓴다. 거대 야당은 국민의 대표로서 국정과 민생은 아랑곳 않고 유사 홍위병 '개딸'을 동원한 난장판 정치에 여념이 없다. 아울러 위헌이 자명하고 국가를 파괴할 수도 있는 악법을 양산하는 한편 터무니없는 악성 가짜뉴스의 확성기 노릇에 중독되어 있다. 다수 야당은 대의정치와 입법을 책임지는 공당(公黨)의 역할을 포기해버린 것인가, 그리하여 스스로 해체하는 길을 가는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헌법기관의 '오만과 타락'은 헌법을 수호할 본령을 그르쳐 결국 헌법을 파괴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문명적 입헌주의의 지속과 국가 번영을 가름하는 역사의 저울에 올라가 있다. 선관위 사태는 헌법기관 개혁의 신호이자 국민적 자유혁명의 예광탄이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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