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

제일기획 입사 12년차에 처음 외쳤다 “디아블로4 제가 하겠습니다”[광고뒷담]

드루이드에 진심인 홍규태 제일기획 CX전략부문 AP팀장 인터뷰
디아블로에 바친 시간 길어...대작 게임에 대한 소비자 기대 이해
밀도있는 체험없이 지갑열게 할 수 없어, 지하철에 ‘지옥’을 꾸민 이유

제일기획 입사 12년차에 처음 외쳤다 “디아블로4 제가 하겠습니다”[광고뒷담]
'그토록 바라던 지옥으로'라는 카피가 등장하는 디아블로4 광고영상.

제일기획 입사 12년차에 처음 외쳤다 “디아블로4 제가 하겠습니다”[광고뒷담]
디아블로4 헬스테이션 체험존 내부. 제일기획 제공

제일기획 입사 12년차에 처음 외쳤다 “디아블로4 제가 하겠습니다”[광고뒷담]
디아블로4 헬스테이션 체험존 내부. 제일기획 제공

제일기획 입사 12년차에 처음 외쳤다 “디아블로4 제가 하겠습니다”[광고뒷담]
홍규태 제일기획 CX전략부문 AP팀장. 본인 제공

[파이낸셜뉴스]“탁월한 카피 한 줄이 세상을 바꾸던 시대는 끝났지만, 광고사의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 바로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것.”
15일 서울 용산구 제일기획 사옥에서 만난 홍규태 제일기획 CX전략부문 AP팀장은 “캠페인의 영역은 흔히 생각하는 TVCF에서 훨씬 더 넓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규태 팀장은 이어 “소비자가 TV를 잘 보지 않아 일어난 결과”라며 “구분이 무의미하겠지만 디지털, 리테일, 소비자경험(CX), 웹3.0 등 소비자가 노는 더 다양한 영역에서 광고회사는 하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고판 대세는 소비자 경험(CX)..밀도있는 체험

삼성그룹의 광고계열사이자 매출규모 순위 국내 1위는 물론 세계 10위권 광고기획사 제일기획의 매출총이익에서 TVCF를 포함한 전통광고 매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일까. 16%에 불과하다. 제일기획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광고기획사의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온라인·마케팅 영역이 절반을 넘겼다. TV 방송이라는 미디어의 영향력, 시청시간 감소에 따른 변화다.

이같은 변화 속에서 제일기획은 지난해 조직을 개편하고 CX전략부문을 신설했다. 어떻게 차별화된 소비자경험(CX)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조직이다. 홍 팀장은 “더 좋은 CX 즉 밀도있는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게 일과”라고 말했다. AP팀은 상품기획과, 리테일, 메타버스 전략까지도 챙다.

경력직으로 제일기획에 입사한지 12년차에 접어든 홍 팀장은 올해 초 디아블로4 광고 경쟁PT 공고 소식을 접했다. 디아블로2가 유행하던 2000년 군인이었던 홍 팀장은 어느날 당직사관에게 찾아가 말했다. “아이템 필요하시지 말입니다. 외출증을 끊어주시면 1개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당직사관은 “두 개”라고 답했다. 그 길로 피씨방을 가서 ‘헬’을 돌며 아이템을 주웠다. 그만큼 디아블로에 ‘진심’이었던 홍 팀장은 입사 후 처음으로 “디아 광고 제가 따오겠습니다”하고 손을 들었다.

덕업일치의 순간, 다같이 1곳을 바라볼 때 일어난 시너지

평소 함께 게임을 즐기고, ‘디아의 추억’을 공유하던 동년배 조용우 AP팀장과 팀을 짰다. 언제나 괴로웠던 아이디어를 짜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홍 팀장은 “광고 일은 협업인데 다른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의견이 충돌하고, 서로 책임을 묻는 것이 다반사다. 디아 프로젝트를 하면서 팀원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전무하고 후무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받은 사장의 메일에는 “이렇게만 일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캠페인 전략을 세울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브랜드를 공부하는 것이다. 캐릭터, 서사, 후킹포인트와 소비자가 원하는 것 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전략이 바로 나왔다 ‘디아블로의 오리지널리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핵심이었다. 단순하게 PC 수십대를 가져다 놓고 디아블로4를 플레이해보라고 권하는 건 체험일지 몰라도, 밀도 있는 체험이 아니다. 차별화된 경험을 주기 위해 서울에 ‘지옥’을 소환하기로 결심했다.

광고주, 제작팀 그리고 AE팀과 함께 디아블로4 헬스테이션 체험존을 꾸몄다. 소비자에게 온라인 게임의 오리지널리티를 오프라인에서 전달했다. ‘디아’하면 ‘지옥’을 떠올리는 소비자에게 ‘어떻게’ 지옥을 전달하느냐가 문제였다. 일치단결한 팀은 다양한 아이디어 속에서 ‘지옥과 관련된 장소’로 ‘지하세계’를 떠올렸다. 홍 팀장은 “온갖 공간을 찾다가 지하철역 유휴 공간을 찾아냈다”며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지하철 역사에 디아블로의 지옥을 소환한다는 서사가 캠페인에 딱 들어맞았다”고 말했다.

가자, 그토록 바라던 지옥으로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도 유휴공간을 활용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적극 협조해줬다. 서울의 한 복판 시청역도 마지막까지 후보지 올랐지만, 제반여건이 안맞았다. ‘서울 한복판에 지옥이 펼쳐졌다’고 쓰지 못한 프로젝트의 유일한 아쉬움이 남았다. 이후엔 일사천리였다.

체험존에 디아블로4 고유의 어둡고 공포스러운 경험을 녹였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사 한편의 사용되지 않는 공간인 지하 4층을 빌렸다. △피의 제단 △피의 어머니 △지옥 포털 등 7개의 체험존을 꾸몄다. 체험자에게 역할을 줬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상한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조사관을 맡아 각각의 공간을 꼼꼼히 살피게 유도했다.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밀도있는 체험을 할 수 있게 설계했다.

보상도 제공했다. 체험을 완료하면 헬스테이션 방문 인증서를 제공했다. 참여자 모두에게는 게임 내 꾸미기 아이템인 ‘피꽃잎 칼날’을 나눠줬다. 호평이 이어졌다. 게임 속 아이템을 모티브로 만든 굿즈가 완판된 것은 물론 게이머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물리적 제약으로 모든 게임 유저를 초대할 수는 없었다. 공간에 대한 영상과 이미지가 온라인으로 확산되면서 디아블로 제작사 블리자드가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런걸 만들었어?’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대세몰이에 성공했다는 설명이다.

광고판 다음 키워드는 '민주주의'?

홍 팀장은 “광고주도 굉장히 열려 있어서 과감하게 결정하고 각종 IP를 스스럼 없이 제공했다”며 “함께 모든 걸 만들어 가는 과정이 그저 고맙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드루이드에 진심인 광고기획자는 ‘덕업일치’를 이룬 순간을 회상하는 내내 호탕하게 웃었다. “왜 드루이드를 플레이하냐”고 묻자 왼쪽 팔뚝 안쪽에 새겨진 늑대문신을 보여주며 “동물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다시 한번 꼭 맡고 싶은 프로젝트'를 묻자, 상품개발단계에서부터 소비자가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의 캠페인을 설명했다. 시리얼 첵스가 초코맛과 파맛으로 소비자 투표를 붙여 상품 출시를 결정한 방식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원재료부터 디자인까지 디테일한 영역에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그 자체로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멀티버스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민주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인터뷰 장소에 울려퍼지는 진심 가득한 웃음소리에 무언가를 더 묻는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