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흑역사/권성욱/교유서가
시중에는 위대한 명장들을 조명하는 책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다. 작가들은 그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신화처럼 포장하고 그 신화에 흠집이 될 만한 치부는 슬쩍 넘기거나 영웅들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미담 쯤으로 취급한다. 대중은 실패한 이야기보다 남의 성공담을 선호하는 법이다. 자기계발서에 위인들의 일화가 빠짐없이 거론되는 이유다.
그러나 흔히 간과하는 사실은 성공한 소수의 뒤에는 실패한 다수가 있다는 점이다. 정말로 눈여겨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은 어떻게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왜 실패했느냐가 아닐까.
'별들의 흑역사'에는 패장 12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물론 중국의 어느 고사에 나온 것처럼 '승패란 싸움에서 늘 있는 일(勝敗兵家之常事)'이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 또한 있게 마련이기에 싸움에 졌다고 무조건 비난할 순 없다. 하지만 패배에도 급이 있다.
전쟁사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거나 중과부적으로 진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삼국지'에서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고 한탄했던 제갈량의 말마따나 일은 사람이 하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패배들은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승리보다 더 위대한 패배 따위가 아니다. 재난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처절하게 깨졌고 어마어마한 인명 손실은 물론 극심한 후유증마저 남겼을 정도다.
더욱이 주인공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낱 ‘잔챙이’가 아니라 중책을 맡은 ‘거물급’들이다. 관운은 좋을지 몰라도 그만한 역량과 인격을 갖췄느냐는 별개라는 이야기다. 읽다보면 때로는 하도 황당해 실소를 금할 수 없고, 때로는 웃기면서 슬프기도 하고, 때론 안타까움과 동정심마저 갖게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싸잡아 ‘똥별’이라며 비웃을 수는 없다. 물론 두 명의 일본 장군의 ‘막장 행태’는 우리로 하여금 기가차게 할 정도이지만 대부분은 무능하기는커녕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고 능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단 한번의 과오가 평생 쌓아올린 명성과 공적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고 역사의 실패자로 이름을 남겨야 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 자신의 아집과 독선, 이기심, 우유부단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역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감투를 씌워준 조직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군의 수장 하머슈타인-에쿠오르트의 말처럼 조직이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을 걸러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당사자의 근면함은 그대로인데 자리가 ‘멍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현실의 부조리함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패자들은 대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위대한 승자 중 한 명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작전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육해공군 장병들은 자신의 임무를 위해 모든 용기와 헌신을 다했으며 이번 작전에 대한 어떤 비난과 잘못은 전적으로 저의 몫입니다.”
그의 연설문은 다행히도 실제로 발표될 일은 없었지만 구차한 변명 한마디 없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진정한 명장의 자질이란 남들보다 특출난 천재성이 아니라 자신의 두 어깨에 놓인 책임의 무게를 얼마나 깨닫고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폴레옹과 한니발처럼 승자보다 더 승자 같은 패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패자는 승자를 빛내기 위한 역사의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할 쪽은 패자들이다.
그들을 미화하거나 재평가하자는 뜻이 아니라 실패에서 교훈을 얻음으로써 진정한 승리를 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한반도는 ‘세계의 화약고’ 중 하나로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열강의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곳이다. 전쟁은 고통스럽기에 더욱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그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 패전이다. 우리는 안보의 중요성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것은 나이 많은 원로세대가 입으로만 안보를 운운하고 “우리가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켰는지 아느냐”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훈계하듯 강조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군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고 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그러려면 지난 과오를 어물쩍 덮기보다는 진솔하게 반성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패전의 역사를 불편하거나 부끄럽게 여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권성욱·전쟁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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