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에버6’의 국내 첫 오케스트라 공연
인간과 로봇 '창의적 협업'에 쏠린 시선
26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관현악단 연습실에서 국내 최초 지휘하는 로봇 '에버 6'와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만다흐빌레그 비르바 작곡의 '말발굽 소리' 지휘와 연주를 하고 있다. 2023.6.30/뉴스1 /사진=뉴스1화상
[파이낸셜뉴스] 이제 로봇이 인간의 ‘지휘봉’도 가져갈 것인가. 지휘하는 로봇 ‘에버6’가 국내 최초로 실제 오케스트라 공연에 나선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오는 30일 로봇이 지휘자로 나서는 공연 ‘부재(不在)’를 선보일 예정이다. 로봇 ‘에버 6’와 최수열이 지휘자로 나서 각자의 강점을 발휘하는 지휘를 펼칠 예정이며, ‘에버 6’와 최수열이 한 곡을 동시에 지휘하며 로봇과 인간의 창의적 협업에 한 걸음을 내딛는다.
정확한 악보 구현에 "로봇이 인간의 지휘봉도 가져갈 것"
에버6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1년 전부터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180㎝에 달하는 키에 어깨, 팔꿈치, 손목 등 관절을 구부릴 수 있다.
다만 에버6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챗GPT 등 생성형 AI(인공지능)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 지휘자의 동작을 ‘모션 캡처’(몸에 센서를 달아 인체 움직임을 디지털로 옮기는 것)해 프로그래밍한 로봇이다.
에버6를 개발한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는 이날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에버6는 프로그램된 대로 시연하는 로봇이다. 공연 전에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짜인 대로 동작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1단계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보여드린 것이고, 차기에는 데이터 학습 등을 통해 ‘몇 박자의 웅장한 리듬으로 지휘해줘’라고 했을 때 이것을 생성해 지휘자가 원하는 보조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로봇이 지휘자로 무대에 서는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다만 해외에서는 2008년 일본의 ‘아시모(Asimo)’, 2017년 스위스의 협동로봇 ‘유미(Yumi)’, 2018년 일본의 2세대 AI 휴머노이드 로봇 ‘알터2’와 2020년 ‘알터3’ 등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지휘자들은 “놀라운 능력 보일 것.. 다만 희로애락 표현하기엔 부족하겠죠”
실제 지휘자들은 로봇 지휘자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합창지휘자인 이화여자대학교 박신화 교수는 파이낸셜뉴스와의 통화에서 “로봇이 지휘를 하면 정확성과 섬세함에 있어서는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능력을 보일 것”이라며 “베토벤의 친구 멜첼이 메트로놈을 발명했을 당시 센세이션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그러나 박 교수는 “로봇이 지휘를 하면 분명 섬세하고 정확한 음악이 되겠지만 인간의 희로애락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베토벤도 메트로놈을 인정하지만 음악 안에는 기쁨과 환희, 슬픔과 증오가 들어있는데 어떻게 정확한 박자로 그것을 모두 표현할 수 있겠냐고 했다. 이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특히 로봇이 들을 수 없다면 말할 것도 없다”고 부연했다.
최수열 지휘자도 “에버6는 지휘 동작을 하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듣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며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허설에 참여해 악단의 소리를 듣고, 악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교정하고, 제안하고, 설득하는 것인데, 에버6에게는 이런 기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또 결정적으로 에버6에게는 호흡이 없다. 오늘 시연 때도 위험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 이건 인간의 호흡과 연관돼 있다”며 “모든 음악에는 (사람이 숨 쉬는) 호흡이 존재하는데, 에버6는 호흡 없다. 그런 배려가 없다 보니 에버6는 정확하게 하는데도 (악단보다) 앞서나가는 오류가 생긴다”고 말했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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