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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적 지혜 담은 ‘한문 고전’이야말로 근대문명 난제 풀 열쇠 [내책 톺아보기]

한문학자 김승룡이 소개하는 고전과 동아시아

인본적 지혜 담은 ‘한문 고전’이야말로 근대문명 난제 풀 열쇠 [내책 톺아보기]
고전과 동아시아 로컬지식학 강의 / 강정화 외/ 미다스북스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그동안 서구 중심의 근대적 가치와 문명이 세계를 지배해 왔다. 수천년간 동아시아에 훌륭한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간과되어 왔고 오히려 동아시아를 변방의 낡은 문화로만 취급해 왔다. 허나 서구가 주도한 근대, 나아가 현대문명은 도처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인데 그 근저에는 인간적, 인본적, 인성적 가치에 대한 상실이 놓여있다.

과학기술의 질주를 절제할 수 있는 인문 분야에 대한 홀대는 더욱 큰 문제를 야기했다. 가깝게는 개인의 인격적 파탄과 인륜의 파괴요, 멀게는 인간사회의 붕괴와 미래 사회 전망에 대한 부재이다. 이는 동아시아 로컬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시민들도 깨닫고 있다. 즉 세계는 동아시아를 '타자화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공존의 동반자' 혹은 '새롭게 일굴 문명의 자산'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 근대 중심주의의 한계를 직면하고 동아시아의 부상이 시기를 맞이했다.

특히 동아시아 문명권은 미래 문명을 열어갈 가능성이 가장 강력한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 문명이 공동으로 가진 문화적 자산인 한자, 그리고 이를 활용해 이뤄진 한문 고전에 기인한다. 한문 고전 속에 담긴 전통적 사유는 골동적 박제를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얻기 시작했고, 전통적 지식은 재발견되어 점차 일상의 상식이 되기 시작했으며, 그곳을 생산해낸 로컬문화의 독자성과 창의성은 현재의 난제를 혁신해내기 위한 문화 기반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고전과 동아시아 로컬지식학 강의'는 '한문 고전', '고전 번역', '동아시아'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다. 한문 고전에 기반한 과거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대사회와 공명하고, 차후 미래를 공명시킬 것이기에 중요하다. 또 고전 번역을 통해 과거의 전통 지식을 현대인이 원용할 수 있는 지혜로 소통시킬 수 있고, 로컬과 로컬의 문화·문명적 자산을 소통시켜 끝내 사람과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소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주목할 지점은 동아시아다. 동아시아가 서양과 구분되는 주변 지역, 아시아의 일부인 '동쪽 아시아'라는 지역(region) 개념에 머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은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황폐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며 통제되지 않는 제국주의적 폭주를 제어할 인간적 가치의 보고이자 저장소다.

이 책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란 '서구 근대문명의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미래 문명을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고자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 문헌학자를 비롯해 고야마 린타로, 피에르 엠마뉴엘 후 등 유수의 외국인 학자 등 총 23명 함께 참여해 지혜와 통찰을 나눠 담았다.

책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다. 한문 고전, 곧 2500년 이전부터 동아시아 문명의 토대가 되었던 한자와 한문으로 담아낸 방대한 고전이야말로 21세기 미래 문명의 비전을 제시할 인간적, 인본적, 인성적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