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은 극단적 진영 정치에 곤죽이 되어 있다. 한국 정치의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민주공화국을 견인하는 두 날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몸통이 썩었다. '이데올로기를 현실로 착각한 문제인(問題人)'이 이끈 시기를 거치면서 공화국의 심장과 허파가 심하게 손상됐다. 그래서 국가는 질식 직전에 이르렀다. 매일매일 가짜뉴스와 덮어씌우기, 음모와 선동의 요란한 소동에 우리 국민은 곤죽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문재인이 만든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난장판" 세태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거짓·기만·선동정치의 인질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한 국가란 군사력, 경제력 등 물리력이 강한 국가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자유·진실·정의의 가치와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현대 민주공화국은 문명의 표준이다. 그러나 표준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 그 하나가 이데올로기 과잉이고, 둘째가 언론과 미디어에 의한 여론의 왜곡이며, 타락한 판사들에 의한 '선택적(지체된) 정의'의 남발이다.
첫째, 이데올로기 과잉의 문제다. 30여년 전 전체주의의 종식으로 세계가 탈냉전 시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한국 정치는 기형적 현상이 돌출했다. 민주화 세력으로 위장된 친북 운동권 세력이 집결했고 이들은 급기야 '촛불시민혁명'의 이름으로 집권까지 했다. 이들은 자주·평화·통일 등 총체적 관념(이데올로기)을 내세우고 자유대한민국을 혁명적으로 해체하려고 했다. 이데올로기 정치의 치명적인 해악은 집단주의적 운동성에 있다. 이것은 정치권력을 남용하기도 하지만 독립된 인간의 사유와 존재의 본질인 자유권을 억압하고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개인을 집단적 이데올로기 운동에 복무하도록 하며, 급기야 개체로서의 자율성과 자유권을 스스로 구속하게 만든다. '촛불'의 우상이 세워지고 집단을 경배한 결과로 만들어진 팬덤 정치는 단순한 집단적 광기를 넘는 체제의 타락을 촉진한다.
둘째, 민주주의는 '여론의 폭정'에 의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문재인이 지휘한 '촛불시민정부'는 괴벨스적 선동정치를 일상화시키는 '언론부역자'들을 정치화시켰다. 그들은 문명적 공론의 조성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 정치의 집단 망상을 세뇌하고 대중의 집단적 광기를 선동했다. 그래서 가짜뉴스와 괴담정치가 일상화되었다.
셋째, 현대 입헌국가에서 사법부는 인권의 보호와 민주공화국 수호의 보루다. 인권의 보호와 국가의 공정한 질서를 보장하는 '정의의 본산'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사법부'는 법의 본질과 기능까지도 바꿔버렸다. 문재인 사법부는 "독립하여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헌법적 명령과 재판관의 본령을 도외시하고 무리 지어 이데올로기 정치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패거리가 집결했다. 김명수 대법원 체제는 '보편적 정의의 수호'가 아니라 특정 연구회의 사법 홍위병들이 '선택적 정의'를 남발했고 돈에 오염된 더러운 '재판거래'까지 노골화되었다.
'여론의 독립적·공론적 형성' '정의의 독립적·보편적 구현'은 좋은 국가를 만드는 건강한 두 허파에 해당한다. 윤석열 정부가 이데올로기 정치를 일소하기 시작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가를 질식시킨 선동언론과 패거리 판사의 분탕질로 기형화된 사법부 여론과 정의가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시행되고 구현되어야 대한민국은 다시 활력을 찾는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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