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출산율이 재앙적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이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달 대한상의 하계포럼에서 법무부 장관은 이민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이미 장관 취임 시 이민청 설립 추진을 시사한 바도 있다.
과거에도 이민 확대가 몇 차례 논의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슬그머니 정책어젠다에서 사라진 일이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출산율 제고에 실패했고, 이제 출산율을 높여 지금의 인구감소 추세를 역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출산율 제고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민이라는 옵션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보다 더 이민에 대해 폐쇄적이었던 일본도 이민자들로부터 '선택받는 국가'로 거듭나겠다고 이민수용에 적극적 행보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증가하는 이민 확대의 불가피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식은 아직 이민에 대해 그렇게 개방적이지 않다.
과거 필자가 재직하는 연구원에서 이민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를 출간한 적이 있다. 보고서는 만약 생산가능인구 감소분만큼을 이민으로 보충한다고 하면 시간이 갈수록 장기간에 걸쳐 매년 수십만명의 이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했는데 그 내용이 보도된 후 항의전화를 여러 번 받기도 했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이민자로 인한 갈등을 예로 들면서 한국은 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항의의 요지였다.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난 폭동 등도 이민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확산시키는 대표적 예이기도 하다.
결국 이민 확대가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에 관한 준비 없이는 이민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성공적 이민정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자 증가는 결국 인종, 문화, 종교 등의 다양성 증가를 의미한다. 이민정책이 성공하려면 다양성 증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이민 확대가 분열과 갈등 확대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가 지켜야 할 핵심가치를 튼튼히 세우고, 그 기둥을 기반으로 다양성을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 그 핵심가치의 영역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정교분리, 법치 등 성문화된 헌법적 가치도 포함됨은 물론이며 문서화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사회·문화적 가치도 포함된다. 이 같은 공동체의 핵심가치를 준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여러 분류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식이 되어야 이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고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사회적 갈등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안보와 관련된 가치도 이민자들이 공유해야만 한국 사회가 이들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접근방식이 이민수용 속도를 더디게 할 수 있겠지만 사회의 통합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이민은 서구 선진국만의 이슈가 아니고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중요한 정책어젠다로 부상했으며 성공적 이민정책이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된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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