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양평 맘카페에 앞으로 양평고속도로에 관한 글을 올리지 말라는 공지문이 떴다. 글을 올리면 운영진이 삭제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회원 수 6만명이 넘는 대표적인 주민 소통 플랫폼에서 지역 숙원사업인 양평고속도로가 금기어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 카페는 '정치색 없음'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고속도로 논쟁이 시작되면서 정치 카페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여야 지지자들끼리 찬반으로 나뉘어 비방하고, 싸우는 온라인 전쟁터 같다. 서로 가짜뉴스와 비방이라고 공격한다. 한목소리로 염원하던 고속도로 건설을 지역 내 갈등으로 변질시키고, 평화롭던 카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모두 다 정치인들 때문이다.
양평은 수도권 거리에 남한강과 북한강이 휘감아 지나는 산자수명한 자연환경이라서 여가와 최고의 전원주택지로 인기를 얻고 있는 지역이다. 내게는 제2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양평은 무려 5중의 수도권상수원 관련 규제로 인하여 대학이나 대기업의 입지 자체가 불가능해서 경기도에서 가장 발전하지 못한 지역이다. 교통도 마찬가지이다. 교통은 수도권 주민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인프라이지만, 양평은 다른 지역보다 현저히 낙후되어 있다. 한번 주말에 양평 나들이를 해보시라. 팔당대교와 6번 도로는 그야말로 주차장이다. 양평 시내도 마찬가지이다. 주민들은 이동의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할 정도이다. 고속도로가 계획대로 잘 마무리가 된다면 양평에서 서울 송파까지 자동차로 15~20분 거리로 단축될 수 있다고 한다. 낙후된 경기 동부 양평에서 경제의 중심지인 서울 강남권에 대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어서 양평군민들의 기대는 엄청났다.
수도권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서울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인프라는 시급하다. 고속도로 같은 기본 인프라는 지역발전의 논리로 접근해야 하는데 현 상황은 거꾸로이다. 어느 날 양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야당 의원이 '새 고속도로가 대통령 영부인 일가의 부동산이 많이 있어서 강상면으로 변경되었다'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야 진흙탕 싸움의 주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정부도 신중했어야 했다. 오랜 기간 준비한 국책사업의 변경 사유를 군민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좀 더 투명하게 진행되어 변경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특혜논쟁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 더는 논쟁으로 낭비할 시간은 없다. 양평에는 이런 현수막도 걸려있다. '20분 걸린다니, 200년 걸리겠다.' 여야가 합의점을 못 찾겠다고, 정부가 단독으로 노선을 결정하기 어렵다고 사업을 접을 것인가. 주민들의 염원을 저버릴 수는 없다. 차라리 양평주민들에게 다 맡기자. 노선들의 장단점을 낱낱이 밝히고 어느 노선이 주민의 편익과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대안인지 주민들이 주민투표에서 직접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 같은 선진국도 주민투표로 논쟁 많은 인프라 사업 도입 여부를 결정한다.
2003년 시애틀 모노레일 프로젝트의 5개 노선안을 놓고 주민투표에 부친 적도 있다. 양평의 지역 사정은 양평군민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새로운 인프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현지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누구도 무어라 하기 어렵다. 양평의 발전과 주민들의 생활 편익을 위하여 고속도로 추진을 조속히 재개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이복실 국가경영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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