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마술피리'
1990년대 독일에서 동양인으로 성악을 한다는 것은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거리에서 밤낮으로 스킨헤드(신나치주의자)의 위협을 느꼈고 마음 붙일 곳이라곤 극장뿐이었다.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오더 극장에서 첫 작품으로 '마술피리' 타미노 역을 맡은 적이 있다. 성악가들과 함께 연습하며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만족감에 타국에 점점 적응하고 있음을 느꼈다.
오페라를 연습하는 과정은 스태프, 성악가들과 수많은 약속을 하는 것과 같다. 무대 위 동선을 정하고 행동을 통일시키는 약속은 반복되는 공연에도 동일한 퀄리티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어느 날, 상대역인 독일 소프라노가 공연 중 약속에도 없던 돌발행동을 한 적이 있다. 마지막 피날레 장면에서 갑자기 입을 맞춘 것이었다. 무척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에 그녀는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동양에서 온 숫기 없는 어린 테너를 놀리려고 작정한 것이었다. 10년간 해외에서 오페라가수로 생활하며 겪은 차별을 돌이켜보면 이건 귀여운 수준이다.
이방인 음악가로서 겪는 차별도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더욱 힘든 점은 외로움이다. 혼자서 호숫가를 산책하며 이국적인 풍경에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극한의 외로움이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음악만이 유일한 친구였던 어느 12월, 얼어붙은 마음을 두드려 준 분이 계신다. 바로 스승인 알도 발딘이다. 아무 연락도 없이 눈보라를 뚫고 찾아오셔서 커피 한잔을 하신 뒤에 "노래하러 가야지!"라고 하셨다. 레슨까지 해주시곤 늦은 밤 기차로 다시 훌쩍 떠나셨다. 추운 날, 커피의 온기가 온몸에 퍼지듯 제자를 향한 애정이 온 마음에 퍼졌다. 레슨 후에 홀연히 떠나시던 모습처럼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던 선생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려움에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오페라를 생각하면 여전히 떨리는 마음과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따뜻함 때문이었다.
'마술피리'에서 타미노가 부르는 아리아에는 이런 소절이 있다. "나의 마음은 떨림으로 가득하네. 그래, 이것이 사랑이도다." 이것이 오늘까지도 '마술피리'를 가장 아끼는 이유다.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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