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이성진 감독이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콘퍼런스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영화 '살인의 추억' 등에서 배운 블랙 코미디, 미국에서도 통합니다."
내년 초 열리는 제75회 에미상 시상식 11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미국 현지에서 인기몰이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의 이성진 감독(41)이 "한국인의 정체성과 창의성, 경험을 그대로 표현한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감독은 지난 16일부터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23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특별 세션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콘텐츠'가 세계인들에게 주목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데뷔 초엔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뭔지, 사람들이 날 싫어하지 않을지 걱정했는데 이젠 다양성 개념이 생겼고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며 "그들은 한국의 정체성과 진정어린 경험을 듣고 싶어하는데,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도 멋진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정체성을 미국인들에게 알리고 흥미를 부여하기 위해 직접 경험한 난폭 운전이나 한인 교회 등 소재를 작품에 투영했다. 특히 이민 2세대들의 경험과 고민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 감독은 "작가로서 제가 아는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기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며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 입장이 돼서 상상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스티븐 연
'성난 사람들'은 미국 아시아계 이민 2세대들의 이야기를 그린 블랙 코미디다. 한국의 유교적 가치 충돌로 인종 갈등을 겪는 이민 2세대의 '내면 분노'가 압권이다.
이 감독은 작품에서 코미디 요소를 '적재적소'에 활용했는데, 한국 영화 '살인의 추억', '복수는 나의 것', '기생충' 등이 모티브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식 블랙 코미디가 충분히 세계인들에게 주목을 끌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기생충' 등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인데, 어두운 내용이지만 많이 웃기기도 한다"며 "한국 감독들은 이렇게 장르를 섞는 걸 훌륭하게 잘해왔다. 너무 웃기거나 진지하기만 하면 시청자에게 닿기 힘들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미국 등 세계로 진출하려는 한국 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 있는 제 친구들은 일본이나 브라질 콘텐츠는 안 봐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K팝을 듣는다"며 "한국인인 우리가 우리들의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데, 한류의 성공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감독은 작품성만 있다면 동양인도 차별받지 않고 당당히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한국식 이름이 잘 발음되지 않아 속상했지만 좋은 작품 제작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그는 "학창시절 출석 부를 때나 성인이 된 후에도 '이성진(LEE SUNG JIN)'이란 이름이 제대로 읽히지 않고 때론 웃음거리가 되는 게 부끄러웠는데, 이름을 되찾은 건 2019년 영화 '기생충'이 계기가 됐다"며 "미국인이 봉준호 감독 이름을 말할 때 실수하지 않고 정확히 발음하려고 무지 노력한다.
내가 좋은 작품을 만들면 미국인이 내 한국 이름을 듣고 더는 웃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 이후로는 이름이 잘 불리고 있는데, 계획이 성공한 셈"이라며 웃었다. 총 10부작인 '성난 사람들'은 한국식으로 성, 이름 순서로 적힌 그의 이름이 매회 화면에 가득 찬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포스터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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