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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추억과 낭만, 자연이 있는 그곳 태국 끄라비 1화

[파이낸셜뉴스]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끄라비 내륙에 있는 맹그로브 숲 '타폼 클롱송남'. /사진=이환주 기자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끄라비에서 높은 뷰를 자랑하는 카페 '카오통 힐'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끄라비 카오통 힐 카페에 있는 안내 문구. "끄라비와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하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다.

여행의 목적이 '장소'가 아닌 '사람'인 경우 계획표가 좀 더 느슨해진다. 이곳저곳 바쁘게 돌아다니고, 이집저집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옛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새로 만난 친구와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다보면 그 자체로 어떤 여행보다 즐거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4년 전 8월, 태국 남부 해안가 휴양지인 끄라비를 처음 찾았다. 대학시절 모교에서 한국어 도우미로 만났던 태국인 친구가 당시 끄라비에서 살고 있었다. '미성'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그녀는 한국에서 공부하며 만났던 캐나다인 남편과 끄라비에서 지내고 있었다.

'미성'도 보고, 휴가도 즐길 겸 필자는 2017년 '프라추압 키리 칸'이라는 태국 중부의 소도시를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녀는 끄라비에 살기 전 이곳에 살았다. '프라추압 키리 칸'은 당시 한국인에게는 매우 낯선 도시였다. 구글과 네이버에 한글로 검색해도 거의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난 현재 '프라추압 키리 칸'은 몇몇 여행 상품도 개발되고 한국인도 종종 찾아가는 어엿한 관광지가 된 듯 하다. 아무도 모르지만 내 마음속에는 훈장처럼 '한국인에게 이 도시를 처음 알린 것은 내가 아닐까'라는 믿음이 있다.

4년 전 찾았던 끄라비를 올 8월 다시 찾았다. 4년 전에는 4식구 모두 찾은 가족 여행이었지만, 이번에는 혼자였다. 개인적으로 15개국 40여개가 넘는 도시를 여행하면서 가장 최고로 꼽는 곳이 끄라비였다. 콘크리트보다 자연을, 쇼핑몰보다 지역 시장을, 산보다 바다를, 바다보다 물(계곡)을 품을 산을 더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최적의 여행지였다.

■태풍 카눈과 함께 2박 연속 공항 노숙
언제나처럼 여행의 시작은 최저가 항공권 찾기부터 시작됐다. 항공권 가격 비교 사이트 '스카이스캐너'에서 요리조리 검색을 하던 중 목적지로의 단순 왕복이 아닌 '서울(인천)→끄라비→방콕→서울' 등 다구간 여행지 설정을 통해 표를 샀다. 저렴한 비행기 표를 찾다 보니 첫날 인천에서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가는 일정이었다. 또 주말 출발 비행기표는 비쌌기 때문에 금요일(11일)에 출발해 다음주 목요일(17일)에 한국에 오는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표는 48만원 정도였다.

인천 출발 시간이 금요일 아침 7시35분이었다. 새벽에 택시를 타고 공항에 오는 것도 부담되고 여차하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목요일 밤 캐리어를 들고 공항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노트북에 미리 내려받은 영화를 보고 공항 벤치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새벽 4시30분, 티켓 창구가 열려 가보니 웬걸, 비행기는 태풍 '카눈'으로 연착돼서 이날 오후 2시 출발로 바뀌었다.

티켓 창구에는 나를 포함해 총 6명이 있었다. 에어아시아 항공 직원들은 인근 호텔 숙소에 방을 잡아 놨으니 오전 11시까지 쉬다 올 수 있다고 안내했다. 새벽 5시가 좀 지나 공항터미널로 버스가 왔고, 6명은 인천공항역에서 3정거장 떨어진 운서역의 한 호텔에서 잠시 쉴 수 있었다. 호텔 조식도 이용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밤에 잠을 설친 탓에 잠을 자느라 조식은 먹지 못했다.

11시에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티켓팅을 하며 미리 받아둔 1만원 식사 쿠폰으로 터미널 내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탑승 수속을 마쳤다. 비행기 출발 시간인 오후 2시 전에 착석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에어아시아 항공편은 또 다시 출발이 지연됐다. 잠시 눈을 붙이고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이미 한번 지연된 출발 시간보다 3시간이 지난 오후 5시를 지나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비행기 안전 점검에 만전을 다하느라 출발이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납득이 가지는 않았다. 마침내 오후 5시 40분경 비행기는 활주로를 떠나 경유지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준비해 온 영화를 1편 반 정도 보자 몸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중동 출신 외국인이 앉아 있었는데 영어로 말을 건네니 바로 한국말로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에이스침대 공장에서 침대를 만드는 노동자 3명이 주말을 맞아 태국으로 휴가를 간다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오후 11시가 지나서야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연착에 대한 부분은 화가 났지만 오전 인천공항에서 버스 대절, 호텔 제공, 무료 식사 쿠폰을 준 대응이 떠올라 쿠알라룸푸르에서 예정에 없던 1박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말레이시아에 도착 후 에어아시아 측은 지연에 대한 어떠한 공지도 보상도 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목적지인 끄라비행 비행기는 다음날 오전 8시에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시간상 수화물 검사 등을 하고 공항 밖에서 1박을 하는 것보다 공항에서 다시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날 묵기로 한 끄라비 호텔의 숙박비는 4만원 정도로 비싸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대로 날려버린 터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배가 고파 쿠알라룸푸르 현지식을 먹고, 허기가 차지 않아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하나 더 사먹었다. 버거킹에서는 이날 아침 운서역 호텔에서 잠시 같이 쉬었던 인도네시아 친구가 있어 잠깐 대화를 나눴다. 그 친구도 배가 고팠는지 햄버거 세트를 앉은 자리에서 2개 먹어치웠다.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끄라비에서 첫 끼를 해결한 현지 식당 '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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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미란다의 대표 메뉴인 태국 북부 요리 '카이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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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폼 클롱송남의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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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폼 클롱송남의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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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폼 클롱송남 둘레길을 걸으며 내려다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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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폼 클롱송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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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폼 클롱송남에서 카누를 즐기는 사람들.

■대 자연이 만든 끄라비의 보물 '타폼 클롱송남'
예정된 일정보다 하루 늦은 11일 오전 10시경에 끄라비 공항에 도착했다. 당초 예정 도착 시간은 9시10분 정도였지만 이번에도 또 연착이었다. 끄라비 공항에서는 태국인 친구 '미성'이 나를 태워다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당초 한국 다이소에서 미성의 어머니에게 주기 위해 '황토찜질팩'을 3개 정도 준비해서 왔지만 인천공항 수화물 검색대에서 압수당했다. 과거에는 분명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에 '황토찜질팩'을 기내에 들고 가려고 하니 '액체'나 '젤' 타입으로 의심된다며 들고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로 붙이는 위탁 수화물로는 보내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렇게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이었으므로 포기해야 했다.

끄라비 현지의 편의점에서 8일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현지 유심침을 500밧(2만원)에 장착했다. 이어서 현지 식당인 '홈린다'에서 첫 끼를 해결했다. 끄라비는 태국 남부에 위치한 도시지만 이곳에서는 태국 북부의 대표 음식인 '카우쏘이'를 팔고 있었다. 진한 카레 국물에 큼직한 닭다리와 면, 그리고 튀긴 에그 누들을 더해 바삭한 식감까지 살아있는 면요리 였다. 또 해당 식당에서만 파는 다양한 음료, 고기와 쌈채소가 같이 나오는 음식, 태국식 덮밥을 함께 시켜먹었다.

허기를 채우고 첫 번째 목적지인 '타폼 클롱송남'으로 향했다. '타폼 클롱송남'은 현지에서 유명한 맹그로브 숲이었다. 4년전 찾았던 에메랄드 풀이 있는 곳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울창한 맹그로브 숲을 둘레길처럼 산책할 수 있는 코스였다. 또 맹그로브 숲을 가로 질러 흐르는 강이 있어 카약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울창하고 튼튼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맹그로브 나무에 걸터앉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산책을 하던 중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처마 같은 곳에서 비를 피하며 옛 친구와 잠시 옛날 이야기를 나눴다.

숲길 코스의 마지막에는 수영을 할 수 있게 조성된 곳도 있었다. 현지 아이들 몇몇이 엹은 빗방울을 맞으며 헤엄을 치고 놀고 있었다.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카오통 힐 카페 표지판.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카오통 힐 카페의 모습.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카오통 힐 카페 밖으로 끄라비의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있다.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카오통 힐 카페에 장식된 글귀. 대략 "롱디는 우리가 더 깊게 사랑할 이유를 준다"는 뜻.

■현지인 추천 끄라비 핫플 '카오통 힐' 카페
타퐁 클롱송남을 지나 다음 목적지인 '카오통 힐' 카페로 향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현지인들에게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카페인듯했다.

주차를 하고 내리자 처음에는 볼품없는 기념품 가게가 하나 보여 생각보다 별로인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명당 입장료 명목으로 50밧을 내자 언덕 높은 곳에 있는 진짜 카페로 안내하기 위한 교통 수단인 썽태우를 탈 수 있었다. 왕복 비용이 20밧이고 표를 받아 카페에서 음료를 사먹을 때 30밧을 할인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카오통 힐 카페는 끄라비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곳이자 인증샷 명소로도 유명한 듯 했다. 음료의 가격은 한국돈 6000원 내외로 싼 편은 아니었지만 탁 트인 바다 뷰와 여러 섬들을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하고, 사진을 찍기에는 최고의 장소였다.

썽태우를 탔던 기념품 가게에는 "끄라비와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하세요"라는 글귀가 영어로 적혀 있었다. 과연 그 말 그 대로였다.

이날 저녁은 평소와 달리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좋은 곳에서 먹기로했다. '더 힐탑 아오낭'이라는 식당으로 역시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어 끄라비의 야경을 보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와인 한 병과 요리 2접시를 시키니 한국 강남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 없는 가격이 청구됐다. 구글 지도에는 해당 장소에 대한 주요 정보로 '밤 문화를 즐기기에 좋음', '커플에게 인기 있음'이라고 적혀 있는데 과연 그러한 듯 했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채로 끄라비에서 첫 밤이 지나갔다.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끄라비의 고급 식당인 '더 힐탑 아오낭'

'끄라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환주의 내돈내산]
'더 힐탑 아오낭'에서 주문한 오리 고기 요리.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