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이 연출한 서울시극단의 '카르멘' / 세종문화회관 제공
“내가 카르멘을 가졌다.” 지난 8일 개막한 연극 ‘카르멘’에서 돈 호세가 자신의 칼에 쓰러진 카르멘을 안고 이렇게 외친다.
비제의 오페라로 익숙한 ‘카르멘’이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치정 멜로극 ‘카르멘’을 연출한 서울시극단의 고선웅 단장은 이날 프레스콜에서 “사랑의 집착이 광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카르멘을 죽였다’는 원작의 대사를 ‘가졌다’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상대가 원치 않으면 죽여서라도 가진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가.
자유로운 영혼의 집시 여인 카르멘은 지난 200년간 팜므파탈의 대명사로 통했다. 성실한 남성을 홀린 방탕한 여성으로 취급됐고, 정작 '환승 연애'한 돈 호세가 가련한 사랑의 희생자로 여겨졌다. 고선웅표 ‘카르멘’은 데이트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상에 맞게 돈 호세의 비틀린 집착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번 연극에는 비제의 오페라에는 없지만 1845년 원작소설에는 있는 카르멘의 전 남편을 부활시켰다. '집착남' 돈 호세와 달리 카르멘의 전 남편과 새 투우사 연인은 카르멘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한다. 고선웅 단장은 "카르멘을 둘러싼 여러 유형의 남자를 통해 돈 호세의 비틀린 집착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극단의 연극 '카르멘' 출연 배우들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전막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카르멘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도발적이다. 자신의 본능과 감정에 충실하다. "누구의 아내도 되고 싶지 않다"는 대사에서 드러나듯, 현재를 즐기면서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여성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고선웅 단장은 “솔직히 카르멘식의 자유분방함도 썩 내키지 않지만, 카르멘의 편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한다”며 "카르멘의 명예회복을 바란다"고 했다.
오페라의 강점인 노래가 없는 자리는 고전의 묘미를 살린, 문학성과 낭만성이 강조된 시적인 대사로 채웠다. 카르멘과 돈 호세의 관계를 투우와 투우사의 충돌로 비유한 것도 흥미롭다. 고선웅 단장은 “죽일 줄 알면서도 달려드는 소와 죽이고 싶지 않지만 죽여야 하는 투우사, 장내와 장외 양쪽에서 투우가 펼쳐진다”며 극의 절정을 설명했다.
고선웅 단장은 앞서 “오페라의 미덕도 지키고, 원작 소설의 줄거리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일까? 연극 무대만의 차별화를 꾀하며 캐릭터 해석을 달리했으나 큰 틀은 원작과 유사해 고 단장의 연출의도가 얼마나 잘 전달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공연은 10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서울시극단의 연극 '카르멘' 출연 배우들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전막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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