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더인 TSMC 회장.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대만 반도체 기적의 주역들은 대부분 1960~1980년대생으로, 이후 20여년간 이공계 대학생 수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최근 이공계 대학원 재학생은 최전성기의 6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입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인 대만의 TSMC 리우더인 회장이 지난해 11월 대만 재계 관련 최대 행사인 '삼삼회(三三會)'에 참석해 한 말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주름 잡는 대만 반도체 업계의 수장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대립보다 반도체 관련 인접 공학의 인재풀 부족을 미래 최대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박사생, 매월 166만원 월급 드립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지난 7월2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 시설을 견학하고 있다. 뉴스1화상
15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회)는 내년부터 65억대만달러(약 2701억원) 이상 신규 투자를 통해 박사과정 정원 확대 및 박사과정생 대상 생활보조금 지급을 골자로한 4대 보조금 정책을 펼 예정이다. 우원충 국과회 위윈장은 12일 기자회견에서 "최근 대만 반도체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위기에 놓였다"면서 "경쟁자들이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과학 연구 기반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재가 관건"이라고 보조금 정책 도입의 배경을 설명했다.
우 위원장은 "얼마전 행정원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리우더인 TSMC 회장과 미디어텍의 차이밍제 회장 등 반도체 업계 거물들이 박사생들이 더 많이 늘어 학위를 마치고 하루 빨리 업계로 나와줘야 한다"고 말한 일화를 전하며 박사급 연구인력 양성과 처우개선에 힘쓸 것임을 밝혔다.
국과회 발표 내용에 따르면
①장학금 수혜 대상자를 300명→600명 확대
②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중점영역 400명 선발
③대상자에 월 40만대만달러(약 166만원) 연구보조금 지급
④국가 연구기관의 박사급 연구원 임금 10% 인상 등 처우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TSMC, 매년 박사생에 2700만원 지원
대만 정부 외에도 개별 기업들 차원에서의 과학연구인재 양성 움직임도 활발하다. 초격차 기술 경쟁 속 반도체 인재의 몸값이 높아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TSMC는 '박사장학금'을 운영 중이다. 올해 장학생 선발공고에 따르면 지원 대상은 '반도체 인접 학과 박사과정 1학년생 또는 입학허가를 받은 학생으로서 반도체 관련 분야 연구를 계획하고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은 자'와 '중화민국(대만) 국적자'다. 박사 과정 기간 동안 매년 50만대만달러(약 2700만원)씩, 최대 5년 동안 받을 수 있다. TSMC 현업 엔지니어들이 직접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다. 방학 중엔 TSMC에서의 인턴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이공계인재 '수혈'나선 대만
대만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파격적 지원이 이어지는 이유는 대만 경제의 근간인 반도체 경쟁력을 결정 짓는 관련 인재풀이 급격히 쪼그라들면서다. 대만 업계 관계자는 "이공계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진학자가 매년 눈에 띄게 줄고 있다"면서 "또 설령 이공계를 선택한 학생들도 몸이 고된 반도체 쪽이 아닌 개발자 등 진로를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관계자는 특히 컴퓨터과학 등 소트트웨어 쪽으로 몰리면서 공대 최고학과로 오랜기간 군림해온 전자공학의 인기가 최근 급격히 떨어진 게 증거라고 지적했다.
대만 교육부에 따르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대학생 졸업자(학부) 수가 2012년 8만2058명에서 2020년 6만5770명으로 20% 감소했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STEM 분야 석사 졸업자 수는 2만7729명에서 2만4517명으로 12% 감소했다. STEM 박사과정 졸업생은 2484명에서 1752명으로 29% 감소하며 빨간불이 켜졌다.
대만 정부는 이공계 관련 정원 확충 등 조치에 나섰다.
韓 공학계열 대학원 졸업자 수 매년 3.6%p 떨어질 것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보고서 중 일부
국내 사정도 대만과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해 발간한 '인구절벽시대, 이공계 대학원생 현황과 지원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초저출산 시대의 출생아들이 대학 졸업생이 되는 2025년 전후로 이공계 대학원의 입학자원 역시 절대규모의 감소를 목전에 두며 선제적인 대응전략 마련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과기연은 2029년까지 자연·공학·의약계열 대학원 졸업자 수는 연평균 각각 3.2%p, 3.6%p, 2.3%p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졸업자 중에서 외국인학생과 성인학습자 비율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신규 과학기술인력의 부족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측됐다.
K-반도체 산학장학생 선점 쟁탈전
(출처=뉴시스/NEWSIS) /사진=뉴시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인재 쟁탈전에 국내 기업들도 '대학원생 입도선매'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2031년 학·석·박사 기준으로 총 5만4000명 수준의 인력 부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1위 기업인 LX세미콘은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17일까지 '2023 산학장학생'을 모집 중이다. LX세미콘은 △등록금 전액 △학업장려금 △교육 지원금 △사내·외 교육·학회·세미나 기회 제공 등을 혜택으로 명시했으며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인 2년간 1억원의 장학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DB하이텍은 △경북대 △서강대 △한양대에서 반도체 인력양성 코스 2기를 10월까지 모집 중이다. DB하이텍 측은 △DB하이텍 소자개발 및 DB글로벌칩 회로설계 부문 채용 확정 △장학금 및 학업격려금(학사 1년+석사2년) △200만원 상당 노트북 지급 등 혜택을 제시했다.
'재계 맏형' 삼성도 채용연계형 계약학과와 별도로 산학인재 연계트랙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서울대(SSSP) △서강대(SSES) △KAIST(EPSS) △POSTECH(PSEP) 등 4개 대학과 반도체 트랙을 개설했다. 석사생의 경우 등록금 면제와 연 1000만원 이상의 장학금과 혜택이 제공된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