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주인공은 '전설의 마라토너 3인'
손기정과 꼭 닮은 하정우 캐스팅
임시완은 서윤복 체형 만들어내
강제규 감독이 8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1947 보스톤'은 전설의 마라토너 손기정·남승룡·서윤복을 주인공으로 한 감동 실화다. 배우 임시완이 서윤복, 하정우가 손기정 역을 맡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제규 감독이 8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1947 보스톤'은 전설의 마라토너 손기정·남승룡·서윤복을 주인공으로 한 감동 실화다. 배우 임시완이 서윤복, 하정우가 손기정 역을 맡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세 사람의 감동 실화에 뜨거움이 차올랐죠. 코로나 이후 힘든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 같았습니다."
영화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 '마이웨이'(2011)로 한국영화 산업화를 이끈 강제규 감독(60·사진)이 '장수상회'(2015) 이후 8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전성기 시절처럼 규모가 큰 200억원대 시대물이자 전설의 마라토너 손기정·남승룡·서윤복을 주인공으로 한 추석영화 '1947 보스톤'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나요?"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서윤복이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 중계방송 해설자의 무심한 말을 뒤로 하고 힘차게 땅을 내딛을 때마다 마음이 웅장해진다. 경기 결과를 아는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역사적 순간을 스크린을 통해 목도하는 시간은 예상 외로 흥분되고 특별하다. 지금이야 'BTS와 블랙핑크의 나라'로 유명하지만, 76년 전 조선은 미군정 치하 '난민국'으로서 선수들의 가슴에 태극기조차 마음대로 달지 못했다.
한국인 선수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손기정(1912~2002)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달렸다. 당시 3위를 한 남승룡(1912~2001)과 함께 시상대에서 오른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월계수 나무로 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렸다. 남승룡은 훗날 "기정이가 딴 금메달보다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회고했다. 서윤복(1923~2017)은 그들에게 한으로 남은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1947년 제51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주인공이다.
'1947 보스톤'은 해방 직후 모든 것이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기 '감독'이 된 손기정(하정우)이 남승룡(배성우), 서윤복(임시완)과 함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강 감독은 "특정 역사와 인물을 다뤘기에 겸허한 마음으로 픽션은 최소화하고 인물의 원형과 역사적 사실에 최대한 가깝게 그리고자 했다"고 연출 방향을 설명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기에 세 인물의 갈등이나 서윤복의 가정사 등에 영화적 상상을 더했지만 큰 틀은 다르지 않다. 세 인물의 유가족이 시나리오도 감수했다. 그는 "캐스팅도 외적 일치감을 우선순위에 뒀다"며 "손기정과 서윤복 선생의 경우 하정우와 임시완의 일치율이 가장 높았다"고 말했다.
"서윤복은 단신이라는 점을 제하면 마라톤에 가장 적합한 체격과 근육 구조를 갖춘 선수라고 하더라고요. 임시완이 유사한 근육 구조와 체형을 만들려고 준비 기간 3개월부터 5개월간 이뤄진 촬영까지 무려 8개월간 식단을 조절하며 고생했습니다."
이는 마라토너 체형으로 변모한 임시완의 몸이 증명한다. 그동안 흘린 피땀눈물이 고스란히 투영된 임시완의 몸은 영화의 감동을 이끄는 주된 요소 중 하나다. 강감독은 "임시완이 극중 육상구락부 선수 11명과 함께 훈련했는데, 단연 돋보였다"며 "임시완의 자세와 동작을 보면서 빨리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보스턴마라톤대회 백미 "호주 산불 속 날씨가 도와줬죠"
'1947 보스톤'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보스턴마라톤대회 장면이다. 보스턴마라톤대회는 미국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애국자의 날'을 기념하며 1897년에 제1회 대회가 개최된 올림픽 다음으로 오래된 마라톤대회다. 호주 멜버른을 중심으로 구현된 마라톤 장면은 그날의 영광을 흥미롭게 재현한다. 강 감독은 "가장 어렵게 찍었고,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굉장히 단조로울 수 있는 마라톤 경기를 어떻게 보여줘야 관객이 직접 달리는 것 같은 희열과 긴장감, 재미를 줄 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죠." 그는 영화 '국가대표'를 언급하며 "(결과적으로 흥행했지만) 관객들이 스키점프 종목 자체도 잘 모르는데, 그 점프대에서 어떤 극적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주변에서) 굉장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서 당시 김용화 감독의 고민이 컸었는데 나 역시 비슷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남미까지 훑다가 극적으로 호주 멜버른을 찾아낸 뒤 마침내 재현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2019년 호주 산불이 발목을 잡았다. "촬영 준비 할 때만 해도 공기 중 연기 입자 때문에 기침이 날 정도였죠. 배우들에게 어떻게 뛰라고 할지 걱정이 컸는데 운 좋게도 촬영 날부터 풍향이 바뀌더라고요. 반나절 비가 와 촬영이 중단된 것을 제하면 날씨 덕을 크게 봤죠."
서윤복은 당시 달리던 중 두 번의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영화에선 한번만 사용했다. 강 감독은 "두 번 다 사용하면 관객들이 오히려 영화적 장치라고 오해할까봐 자제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캐릭터와 대사가 현대적이고 동시에 절제미가 돋보인다. 강 감독은 "소재 자체가 애국심을 자극하거나 신파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담백하게 연출했다"며 "팩트 자체가 감동적이기에 그걸 담대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이 영화가 왜 이 시대에 존재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세대일수록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근원적 질문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과 달리 나라가 곧 나였던 시절에 살던 세 사람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묻는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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