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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비밀번호 생긴 행복주택

[기자수첩] 비밀번호 생긴 행복주택
현재 행복주택에 살고 있다. 행복주택은 사회초년생 무주택자의 주거불안 해소를 위해 만든 공공임대주택이다. 청년, 신혼부부, 노인 등이 최대 1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다. 100여가구가 사는 한 동 아파트로 지하철역이 5분 거리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살아서 집에 정이 들었다. 임대료가 주변 시세의 절반도 되지 않아 제법 저축도 했다. 행복주택의 목적이 주거사다리 역할이라면 매일 체감하고 있다.

행복주택 1층에는 국공립어린이집이 있다. 단지 바로 옆은 초등학교다. 인근에 주거지가 많다 보니 태권도복 입은 아이들이 아파트 '실내 통로'를 따라 단지 이곳저곳을 누빈다. 하지만 어느 날 통로에 도어록이 생겼다. 이미 1층 현관 게이트에는 비밀번호가 있어 입주자만 동 내부로 들어올 수 있다. 단지를 가로질러 가는 통로에도 추가로 입주민만 비밀번호를 누르고 오가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주민들에게 묻지도 않고 도어록이 달린 점이다. 엘리베이터에 비밀번호가 적힌 A4 종이가 붙는 소통방식도 좀 그렇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평소 단지를 자유롭게 다니다 빙 돌아가게 됐다. 몇 아이들이 갑자기 생긴 도어록을 흔들다 뒤돌아섰다. 이곳은 소유주가 없는 공공단지다. 서울시가 단지 외곽 개방, 담장 미설치 등 개방형 단지 디자인을 도입한 정비사업장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시대에 공공임대주택은 더 닫힌 단지가 됐다.

물론 일부 입주자는 주민 아닌 사람들이 오가는 게 불편했을 수 있다. 하지만 국공립어린이집, 주민 편의시설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비밀번호가 생기는 결정은 일방적이라고 느껴진다. 입주자들은 외부활동이 많은 대학생, 직장인 위주라 입주자 모임은 현실적으로 구성되기 어렵다. 개인 소유의 집이 아니다 보니 관심도도 떨어진다. 자연스레 목소리 큰 사람을 통해 단지는 아무도 모르게 바뀐다.

현재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공급량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앞으로는 양과 동시에 공공임대주택의 내재적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관리·운영에 초점을 두고 입주민을 위한 규칙, 프로그램을 매만지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부 건설형 임대는 작은도서관, 어린이집이 들어선 만큼 지역 내 공적인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의 재정이 투입된 행복주택이 모두에게 열린 길이 되도록 세세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때다.

junju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