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

[이가희의 스토리 수첩] 87세 미켈란젤로처럼

시스티나 성당 그림 끝내고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그 좌우명이 나의 원동력

[이가희의 스토리 수첩] 87세 미켈란젤로처럼
필자는 스스로 여행가 기질이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행가이기에는 모험을 두려워하고, 겁이 많고, 특히 낯섦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다. 오히려 익숙한 장소에서 오는 편안함을 즐기는 편이다. 혹여 여행을 가더라도 살아가면서 평생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그 여행의 가치 때문에 교통편이나 숙소의 안락함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모험을 즐기지 못한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주말이면 일상을 떠나 두세 시간 짧은 거리의 여행은 자주 한다. 일요일마다 우리나라 곳곳의 풍경을 찾아, 맛집을 찾아 탐닉하러 다니고 있다. 이른 봄, 서둘러 남쪽의 봄소식을 찾아 섬진강을 따라 매화꽃, 산수유꽃을 보러 달려갈 때면 여행가방을 챙기는 것만으로 설렌다. 여름 바다, 가을바람 억새꽃의 지휘도 그리고 겨울의 함백산에 피는 하얀 눈꽃 산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요즘 왜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심드렁해지고 이 안에 고인 물들이 지루하다고 느끼는지 모르겠다. 코로나를 겪으며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음에도 변화가 없는 일상은 지루하다. 고여 있는 이 현실이 싱그러워지고 아름다워지려면 떠나는 결단이 필요하다. 나를 더 잘 알기 위해 내일로 그리고 낯설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은 자신을 돌아보며 홀로 두기 그리고 나를 또 다른 모습으로 발효시켜 내 자리로 되돌아오기 위함이다. 또 다른 길로 가기 위해 여행가방을 꾸려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필자에겐 2년을 기다린 여행이다. 딸이 쏘는 60세 기념여행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늦어졌다. 딸 잘 키우면 비행기 탄다는 옛말 그대로다. 딸이랑 1주일 동안 파리 여행부터 시작한다. 바르셀로나부터는 '이탈리아 사돈식구'도 합류한다. 파리의 미술관, 작가의 생애와 스토리가 담긴 유적지와 뮤지엄 중심으로 여행코스를 보내왔다. 늘 그랬다. 어느 날인가부터 필자의 딸은 미국에서 공부한 탓인지 세계의 문화를, 역사를, 그림을, 음악을, 음식을 엄마인 필자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맛보여주고 싶어 했다. 보내온 관광일정표가 빡빡했다. 헤밍웨이,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등이 작업하던 카페,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등이 잠든 곳, 로댕박물관, 루브르박물관, 오랑주리미술관, 피카소미술관…. 온통 박물관과 미술관 투어였다. 유화를 시작한 엄마를 위해, 시인인 엄마를 위해 설계한 일정이라고 해석하기로 했다. 물론 원스타 미슐랭 레스토랑도 하나 껴있긴 했다. 도보로 거의 걸어다닐 것이니 편한 신발이 필수라 했다.

필자는 이탈리아인 사위를 맞았다. 그 덕분에 유럽을 자주 갈 기회가 생겼다. 여행으로 교과서 밖의 배움을 얻는다. 가슴으로 느끼는 깨달음은 때로 종교처럼 위대하다. 여행은 그 나라의 몇 천년의 역사와 문화와 사상을 여행자에게 그대로 안겨준다. 여행자의 가슴에 뭉클함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새겨준다.

87세의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성당의 천장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스케치북 한쪽에 이런 글을 남겼다.
"Ancora imparo!"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라는 이탈리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필자도 87세의 미켈란젤로처럼 외치고 싶다. 그리고 필자의 시 한 구절처럼 '살아 가면서와 살아 내면서의 차이'를 새기며 오늘도 87세 미켈란젤로처럼 계속 배워갈 것이다.

■약력 △60세 △충남대 간호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문학석사 △한남대 대학원 문학박사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책임연구원 △우송대 겸임교수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KSTI) 원장(현) △지식재산스토리텔링협회(IPSA) 회장(현) △한국노벨과학포럼 공동대표(현)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