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기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 펴낸 소설가 복거일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국가... 이승만 前 대통령 빼놓고는 현대사 쓸 수 없어
기념관은 그의 행적 살피는 또다른 기회 될 것
다음 작품으로는 인공지능에 관한 과학소설 구상
소설가 복거일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승만 전기소설을 쓰게 된 배경과 책을 통해 이 시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우남(雩南) 이승만의 행적을 살피고 평가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긴요한 부분입니다." 최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을 출간한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 복거일은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복 작가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우남의 공(功)과 업적을 집중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복 작가는 2014년 간암 판정을 받고서도 이승만 연구에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붓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규정했다. 이념 대립이 극에 달했던 근현대사의 시대적 환경을 직시해야 한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승만 일대기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긴 작품은 필연과 우연이 어우러져서 나옵니다.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에서 이승만은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빼놓으면 우리 현대사를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그의 행적을 살피고 평가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긴요한 부분입니다. 이승만의 삶과 업적에 대한 폄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그에 관한 사실들이 극도로 왜곡되고 지워지는 현실은 그런 필연을 사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의 격동기를 '이승만 시점'으로 관찰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승만의 삶은 우리 역사를 보는 창이라고 여깁니다. 그의 삶이 우리 역사의 전개에서 워낙 중요했으므로, 그의 눈으로 보면 우리를 형성한 요소들이 잘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역사적 풍경 속에 그를 놓아야 비로소 우리는 이승만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졸작에 이승만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통상적 역사소설이나 전기소설과는 다르다는 얘기죠. 역사적 풍경 속에 이승만을 놓고 그를 다시 살피는 것은 힘든 지적 작업입니다.
―책 내용이 방대합니다. 주목해야 할 하이라이트는 어떤 부분입니까.
▲아무래도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밝히는 대목에 마음이 많이 가죠. 1945년의 얄타 회담에서 조선에 관한 비밀 협약이 있었다고 이승만이 폭로한 사건에 특히 마음을 썼습니다. 그의 폭로로 한반도를 독차지하려던 소비에트 러시아의 음모가 좌절되고 대한민국이 세워질 지리적 요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 비밀 협약의 내용을 추적해서 밝힌 것은 저로선 흐뭇한 일입니다.
―이승만에 대한 공과 논쟁이 여전합니다. 이 책은 객관적 사실 혹은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까.
▲소설은 역사서나 논문이 아니니 이승만의 공과를 따지는 일은 핵심적 사항은 아닙니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편향적이었으므로 사실을 밝히면 자연스럽게 그의 업적과 허물이 함께 드러나겠죠. 우리 사회는 국경 안의 일들에 너무 집착합니다. 우리 역사 개설서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늘 작은 국가였으므로 우리 역사를 형성한 중요한 사건들은 거의 다 외부에서 일어난 일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개항 이후 우리를 형성한 힘들도 모두 외부에서 왔습니다. 특히 발전된 문명을 지니고 밀려온 서양 세력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2차 세계대전으로 독립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 거대한 전쟁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현실은 비참할 정도로 다릅니다. 저는 그런 사정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승만의 아들인 이인수 박사가 4·19묘역을 참배하고 유가족에게 남긴 언급들이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영향을 미칠까요.
▲그 일은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 도움이 되니 기념관 건립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양쪽이 좀 화해하는 방향으로 한다는 것이니까요. 이승만이 역사적으로 두드러지게 중요한 인물이니 그를 알아야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됩니다. 편향을 조금이라도 씻어내려면 이승만의 행적을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이승만 기념관은 그런 기회를 제공하게 되겠죠.
―과거 역사를 둘러싼 이념 충돌이 심각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 아닌가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70년 넘게 자유민주주의를 정치적 구성 원리로 삼았고 시장 경제를 경제적 구성 원리로 삼았잖아요. 이런 역사를 지닌 나라가 아시아 대륙에서는 드물거든요. 그러니까 우리의 정체성이 아주 좋아요. 이런 정체성을 많이 새길수록 융화가 이루어질 수 있거든요.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와 이웃한 나라가 러시아, 북한, 중국입니다. 이 세 나라 다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민주주의 경험이 단 1년도 없는 나라들이에요. 그런 나라들과 우리나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가 외부의 영향을 잘 막아내고 좋은 정치적 구성 원리와 경제 발전까지 이룬 과정을 잘 이해하면 융화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진영논리를 떠나 대승적인 역사관으로 융화를 할 순 없을까요.
▲저는 본질적으로 우리나라 좌우가 똑같다고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다는 식으로 나가면 우리 대한민국의 우수한 구성 원리의 타당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거든요. 그러니까 대승적인 건 좋은데 그 지향점만은 하나여야 될 거 아니냐 그런 얘기죠. 그것이 뭐냐 하면 대한민국의 구성원리인 거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입니다.
―작품을 다루는 영역이 매우 넓은 편입니다. 차기 작품으로 염두에 둔 주제는 무엇입니까.
▲저는 원래 과학소설 작가입니다.
인공지능에 관한 과학소설 작품을 쓸 생각입니다. 원시적인 인공지능에서 지금은 상당히 발전된 인공지능이 나왔잖아요. 예컨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전체주의 위협을 다뤘어요. 엄청난 통제와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는 세상이라는 먼 미래를 내다본 작품이죠. 그런데 지금은 AI가 발전했을 때의 미래를 예측해봐야죠. 그래야 우리가 미리 대비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출 수가 있거든요. 미래를 예측하고 그 모습을 미리 보여줘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과학소설의 역할입니다. 제가 원래 과학 소설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일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습니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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