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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신냉전을 반기는 북한 대처법

[fn광장] 신냉전을 반기는 북한 대처법

"미국이 미일한(美日韓) 삼각군사동맹을 수립함으로써, 동북아에는 신냉전 구도가 들어서게 되었다." 지난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 김성 유엔대사가 한 발언이다. 며칠 전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북한은 급기야 핵무력 강화정책을 헌법에 명기했는데, 김정은은 연설에서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되는 현 상황에서 핵무력을 불가역적 국법으로 고착시킨 우리의 결단은 천만 지당하다"고 역설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신냉전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과 달리 북한은 신냉전의 도래를 오히려 반기는 모습이다.

미소 냉전이 다소 급작스레 종식되었을 때 북한은 '멘붕'에 빠졌다. 러시아와 중국이 차례로 한국과 수교하자 북한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동유럽의 공산 독재정권이 줄줄이 무너질 때 김일성은 불안에 좌불안석했고, 핵무력 개발에 본격 돌입하며 자주국방 노선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탈냉전의 국제질서는 북한에 가혹한 시련을 안겨줬다. 세계화의 흐름에 편승한 국가들이 역대급 발전을 이뤄낼 때 고립을 선택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의 연속이었다.

이런 북한에 신냉전 시대 도래는 큰 기회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냉전은 미소 냉전과 같이 이념적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가 옛 소련과 같이 공산주의 이념을 전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는 교조적 이념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식 정치·경제 모델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인식하에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바꾸려 하고 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국가를 '수정주의 국가'라고 한다. 이념적 경쟁의 성격을 띤 강대국 경쟁은 필연적으로 '진영화'를 수반한다. 자유주의 질서를 수정하려는 전체주의 국가들이 한 진영을 이루고, 이들로부터 기존 질서를 수호하려는 자유주의 국가들이 또 다른 진영을 이루어 전방위적 경쟁을 하고 있다.

진영화의 국제질서에서 북한의 몸값이 한껏 올랐다. 중러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를 알고 전체주의 국가의 앞잡이 역할을 자임해 수행하고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내놓고 지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김정은은 푸틴과의 정상만찬 자리에서 한미일을 '악의 무리'로 규정하고 이들을 "징벌하고 정의의 싸움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런 북한이 중러는 기특할 것이다. 진영화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중러가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아예 시늉조차 안 한다. 오히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싸고도는 모습이다. 중러는 신냉전 진영 대결의 앞줄에 서서 돌격대 역할을 하는 북한을 계속 두둔할 것이다.

동북아 안보 구도의 진영화는 상당히 구조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최근 북러 밀착 역시 강대국 경쟁에 수반되는 진영화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국이 너무 "막 나가는" 북러와 일정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중러 진영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사실 중국으로서는 자유주의 진영을 거칠게 밀어붙이는 북러가 고마운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자국이 하기 껄끄러운 일들을 북러가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러 밀착을 계기로 중국 외교전략의 변화를 바라서는 안 된다. 중국 역할론의 함정에 빠져서도 안 된다.

구조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진영화의 안보 구도하에서 한국의 정책 선택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단 이러한 진영 대결의 동북아 안보 구도가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발생했다는 주장은 과도하다 못해서 자해적이다. 설익은 동북아 균형자론이 다시 등장할까 걱정이다. 지금은 워싱턴 선언과 캠프데이비드 협의의 후속조치에 공을 기울이며 자유주의 진영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