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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의무공시 2년 남았는데… 인력도 가이드라인도 없다 [기업들 'ESG 딜레마' <상>]

대기업은 담당자 두고 있더라도 자회사·협력사 등은 여전히 부족
자체 시스템 갖춘 곳 14% 그쳐
"의무화 연기해야" 목소리 확산

ESG 의무공시 2년 남았는데… 인력도 가이드라인도 없다 [기업들 'ESG 딜레마' <상>]
국내 기업들이 새 무역장벽으로 떠오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 공시를 기피하는 이유로 인력 부족, 표준 플랫폼 및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부재, 비용 부담 등이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상당수 상장기업들은 2025년으로 예정된 국내 공시 의무화를 늦추거나 관계당국이 적극적인 시스템 마련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SG 의무 공시 "기준은 깜깜이"

A대기업 ESG 담당 팀장은 4일 "가장 큰 문제는 ESG 담당자 부족"이라며 "ESG 공시비율이 30%대 수준인 줄 몰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기업만 보면 대부분 ESG 담당자가 있다고 해도 범위를 자회사, 협력사 등까지 확대하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대기업 ESG 담당 팀장은 "아직까지는 자율 공시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진 않지만 의무 공시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만약 'ESG 내용을 보고 투자했다'는 투자자가 있는데 수치가 잘못된 부분을 나중에 알게 되면 소송 등에도 걸릴 수 있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기업에 위험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8월 국내 대기업 및 중견기업 100개사 ESG 담당 임직원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56%가 '국내 ESG 의무 공시 시기를 최소 1년 이상 연기하고 일정 기간(2~3년)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윤철민 대한상의 ESG 경영실장은 "기업들이 많이 요구하는 두 가지는 전문인력 지원과 협력사 간 ESG 데이터 비교분석 등을 위한 국가 차원에서의 통합플랫폼 구축"이라며 "대기업 입장에서는 협력사 A, B, C, D의 자료가 모두 필요하고 반대로 협력사들은 여러 대기업들이 자료를 요구하니 이것을 시스템화해 달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수준 한참 밑돌아

대한상의 조사에서 100개 기업 가운데 내부 인력만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곳은 전체의 9.4%로 파악됐다. 대부분이 외부 도움을 받고 있는 셈이다. 공시를 위한 자체 ESG 전산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14%에 불과했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 등이 요구하는 '스코프 3'(협력업체 등을 포함해 가치사슬 전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를 공시하는 곳은 32%에 불과했다. 이는 글로벌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의 '글로벌 공급망 리포트 2022'에 따르면 지난해 CDP에 기후 데이터를 공시한 기업 중 스코프 3 데이터를 하나 이상 포함한 기업은 전체의 41%다. EU 기업의 경우 71%가 스코프 3 데이터를 공시했다.


이재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및 ESG연구원 원장은 "아직 ESG 보고서에 대한 기업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다만 원청업체가 공급망 개편을 하는 경우 (보고서를 내지 않은 기존 기업들이) 여기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지속가능보고서(ESG 보고서) 가이드라인 작성 시 기업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환경일 것"이라며 "특히 온실가스 배출 부분은 측정방법도 다양하고 측정대상도 모호해 정확한 숫자의 도출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해당 제도가 '규정'이기 때문에 잘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보다는 못한 기업에 제재를 주는 게 나을 듯싶다"고 밝혔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