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2) 마우로 스타치올리
군더더기 없는 조형물로 소통하는 이탈리아 조각 거장
시멘트·철판·페인트만으로 도시에 강렬한 생명기운 불어넣어
커다란 몸집에도 장소·건물과 이질감 없이 시공으로 스며들다
이탈리아 조각가 마우로 스타치올리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제작한 '88 서울올림픽'
고리 모양의 동그라미(SBS 목동 방송센터), 거꾸로 박혀 있는 역삼각형(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마치 물 찬 제비처럼 날렵하고 경쾌하게 비상하는 형상(일신방직 여의도사옥), 테니스 스트로크 궤적을 연상시키는 힘 있는 라인(서울 올림픽공원). 모두 몇 해 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마우로 스타치올리(1937~2018·사진)가 한국에 남긴 대형 조각 작품이다.
시멘트와 철판 그리고 붉은 페인트 등의 조합으로 제작된 그의 추상조각은 몇몇 단순 형태로 환원된 간단·단순·명료한 작업이 특징으로 군더더기가 없다. 억지 호소를 늘어놓거나 불필요한 조형언어로 치장한 해설적 작품이 아니라, 지나친 사족과 분장에의 욕망을 금욕적으로 거세한, 강렬한 생명기운을 강조한 '조형 고갱이'다.
주지하다시피 스타치올리는 도시 공간과 특정 장소를 위한 조각을 주로 제작해왔다. 장소가 지닌 역사성, 그곳에 스며있는 시간의 흐름, 시간의 흔적, 궤적을 삼투하고 거주자와 이용객들에게 그들의 공간과 특정 장소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유도하고 작품을 통한 도시들의 인식 변화를 의도한다.
따라서 스타치올리는 작품이 설치될 공간의 장소성과의 밀접한 관계를 중요시한다. 작품이 설치될 장소와 공간의 물리적, 심리적 특징과 지형, 건물의 표정과 기능을 철저히 분석, 이해하고 드로잉을 시작한다. 건물이나 작품이 자리할 공간에 대한 이해와 공간의 역사성, 지형의 통시적, 공시적 소통가능성 등을 복합적으로 살핀다. 이른바 대표적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작업이자 의제 특정적(issue-specific) 작업이다.
스타치올리는 흔히 '일신 여의도 91', '과천 90', '88 서울올림픽' 등과 같이 작품 제목에 제작연도와 장소를 명기한다. 작품의 제목에 설치된 장소나 건물의 이름을 명기하는 것도 그만큼 공간과 장소성 그리고 그것과의 관계성을 치밀하게 고찰한다는 방증이다. 한국을 비롯해 고국 이탈리아, 미국, 대만, 벨기에, 독일, 포르투갈, 프랑스 등지에 영구 설치돼 있는 대형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스타치올리의 작업은 조각을 통해 사회적 질문을 던지는 일종의 행위 프로젝트다. 그는 본인의 예술행위를 '개입하는 조각(sculpture-intervention)'이라고 말한다. 일방적, 폭력적 개입이 아니라, 유연하고 수평적인 개입이다. 장소에 대한 불필요한 물리적 간섭을 지양하고, 유기적 상호공존태를 지향한다. 따라서 작품의 커다란 몸집과 몸짓에도 불구하고 무리 없이 유기적으로 시공에 스며든다.
콘크리트와 철판을 주재료로 사용하지만 건조하지 않으며 역동적 미감과 채도 높은 붉은 색으로 마감된 전체 인상은 가로세로의 딱딱한 건물과 무채색의 회색 도시의 건조한 표정에 힘을 더하며 활력원으로 기능한다. 오가는 시민들에게 희망과 힘을 주는 긍정적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당 건물이나 공간은 물론 주변으로 활력 기운을 쉼 없이 내뿜는다. 물리적으로는 환원 형식이지만, 확산이라는 심리적 역동성을 창출한다.
스타치올리의 작품이 오늘도 살아 숨쉬고 있는 '생물'인 이유다.
관객의 마음속에 언제나처럼 살아 꿈틀거리는 조각, 공간을 부담 없이 당당하게 가르며 부딪는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의 커다란 울림이 묻어나는 공감각적인 조각. 이것이 단순 표지석(monument)으로서의 개념체가 아니라, 생명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마우로 스타치올리 조각이 지닌 긍정의 힘이자 징표일 것이다.
옥외 공간에 설치되는 미술장식품, 환경조형물은 건물과 공간을 기계적으로 장식하는 '문패 조각'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상징하며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기능해야 함을, 한국의 현대조각가들은, 스타치올리의 경우를 통해 돌아봐야 할 것이다.
박천남 2023한강조각프로젝트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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