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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의 외교포커스] 인태전략과 한국외교

韓美日 3국 협력체제 구축
中과 상호주의 원칙 견지
국제무대 발언권 강화를

[최원기의 외교포커스] 인태전략과 한국외교

현 정부가 그동안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외교정책을 꼽으라면 단연 인도태평양전략을 들 수 있다. 인태전략 세부내용이 공개된 건 작년 12월이지만 정부 초기부터 방향을 정하고 꾸준히 추진해 왔다. 인태전략 1년, 한국 외교는 그동안 어떻게 달라졌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그동안 활발한 다자·양자 정상외교 현장에서 보편가치와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단호하고 원칙적인 메시지를 일관되게 발신해 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 한국의 외교 정체성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전략적 신뢰와 협력 기반이 대폭 강화되었다. 이제 한국은 거의 모든 주요 국제회의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멤버가 될 정도로 그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지금 국제정세는 오랜 기간 국제사회의 근간을 이루어 온 규범과 제도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화·영유권 주장과 대만 무력통일 위협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이 스스로 국제법을 어기는 '힘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가 빈번해지고 있다. 미국 혼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떠받치던 단극체제도 끝난 지 이미 오래다. 유엔은 기능부전이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유명무실하다.

인태전략은 자유진영 국가들과 연대해 이런 위기를 타개하고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미래 국제질서가 몇몇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판치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전락한다면 한국과 같이 북핵의 실존적 위협과 강대국으로 커진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중견국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국제법과 다자주의 질서 구축에 한국의 미래 번영과 사활적 이익이 직결되어 있다. 자유진영과 연대하고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외교적 보폭과 발언권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한미 간 협력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워싱턴 선언'으로 대북 억지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한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 특히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로 한미일 3국 협력체제가 구축되어 우리의 글로벌 전략공간이 대폭 넓어진 것도 의미가 크다. 또 한국은 이제 공적개발원조 예산 세계 10위의 주요 원조공여국으로 부상했다. 국제사회에서 기여 책임과 역할이 더욱 커졌다.

'상호존중과 공동이익' 추구라는 상호주의에 기초한 대중 외교원칙을 확립한 점도 매우 중요한 진전이다. 중국은 한국이 조급하게 미국 편에 가담하지 말고 중립을 지키라고 압박해왔다. 미중 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국내 일부의 주장도 중국의 이런 요구와 맥이 닿아 있다. '미국에 다걸기'하고 '한미동맹에 올인'하면 한중 관계가 악화되고, 한미일이 협력하면 한반도에서 냉전적 진영대결이 고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중 간 등거리외교를 하면 한중 관계가 좋아질 거라는 주장은 희망적 사고에 기초한 '착시'에 가깝다.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전략적 지향은 우리와 구조적으로 다르다. 균형외교 시각에서 보면 중국의 선호에서 벗어나는 모든 한국의 외교적 선택은 대미 경사이고, 미국 편승이다.
결국 인태전략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주장은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외교적 역량을 무력화시켜 묶어두려는 중국 외교논리의 복사판에 불과하다.

북핵, 제조업 공급망, 핵심광물 등 지금 우리가 마주한 대부분의 주요 도전들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관련돼 있다. 중국 눈치를 보면서 우리의 역량을 스스로 제약하기보다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외교로 한국의 전략적 체급과 외교적 역량을 키우는 길만이 안정적 한중 관계 구축의 지름길이다.

■약력 △54세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 △미국 워싱턴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책임교수(현)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현) △한국외교협회 외교지 편집위원(현)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