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언론 인터뷰 파동은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한중 관계에 대한 불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중국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최근 들어 자주 감지된다. 윤 대통령과 리창 총리의 지난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의 만남, 시진핑 국가주석과 한덕수 총리의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만남 이후 한중 관계가 해빙된 듯한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 인사들도 "중국은 한중 관계 발전에 분명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한국 외교가 미일에 이어 중국에도 큰 성과를 낼 것이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한국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로서 아직 낙관하기 어렵다.
한중 관계 개선의 첫 단추로 여겨지는 한중일 정상회담의 경우 회담 특성상 중국에서는 총리가 참석하고 경제이슈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난이도가 낮다. 개최 가능성이 크다. 단 한중일 3국 외교부의 단계별 준비와 중국의 국내 정치일정상 올해 개최는 시간적으로 촉박해 보인다. 내년 초라도 열린다면 한중 관계 복원에 대한 기대치는 커진다.
다음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한중 정상회담이, 2023년 말 혹은 2024년 초 한중일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릴 수 있다면 난이도 높은 시 주석의 '10년 만의 방한'도 기대해볼 만하다. 한국 정부는 시 주석이 한 총리에게 먼저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한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국의 원칙적 입장으로 이해된다. APEC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짧게라도 열린다면 시 주석의 방한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올해가 될지는 자신 없지만 내년엔 기대하셔도 좋다"는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은 신중함이 묻어나나 여전히 낙관적 느낌이다. 중국 측은 한국처럼 누가 먼저 와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나, 먼저 온다면 대신 조건을 달 듯하다. 첫째, 환영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적어도 대중 적대시·경원시 분위기는 없어야 한다. 둘째, 한국 측이 방한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적어도 사드 3불(사드 추가배치와 미국의 MD체계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음)의 견지와 대만, 남중국해 등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한다는 약조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대중 정책은 한미 관계뿐만 아니라 미중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켈리 기후변화특사,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방중한 데 이어 곧 척 슈머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방중도 예정되어 있다. 이들의 연쇄 방중에서 보듯 미국의 각 분야 채널 복원 노력이 확연해지면서 한국도 한중 관계 관리모드가 필요해졌다. 미중 관계의 가드레일 안에서만 움직여도 현재의 한중 관계보다는 훨씬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적으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했기 때문에 중국이 끌려온다는 시각이 있다. 일부 맞으나 한국의 대중 우위는 크게 취약하다. 경제 이외에도 북한은 여전히 한국 안보에 큰 약점이다.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9·9절) 75주년 행사에 류궈중 경제담당 국무원 부총리가 참석한 것을 보면 중국은 대북 경제협력과 지원을 지렛대로 북한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의지가 있어 보인다. 중국은 북중러 북방 3각에 동참하지 않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위기와 함께 불안감이 커지는 한반도에서 중국의 역할이 재부상할 듯하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는 속담에서 뒷걸음질하다 쥐 잡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뒷걸음치다 잡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단 확률적으로 희박하고 행운에 기대야 한다. 한미일 협력 강화로만 중국을 다루기 쉽지 않고, 한국의 독자적 대중전략이 필요하다. 때늦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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