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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美·유럽 간 국부 차이가 주는 시사점

[서초포럼] 美·유럽 간 국부 차이가 주는 시사점
최근 국내외 언론과 세계 경제기관이 분석한 미국과 유럽의 국부 차이는 우리나라의 중장기적 국가경영전략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유럽특파원에 따르면 '평균적인 유럽연합(EU) 국가는 아이다호주와 미시시피주를 제외한 미국의 모든 주보다 가난하며, 유럽이 미국과 비교해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고 위클리비즈가 보도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2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EU를 추월한 이후 점점 격차가 커져 2022년에는 미국의 GDP가 EU보다 8조8000억달러 많았고, 2028년에는 11조2000억달러로 차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는 미국 50개주와 EU 국가들의 1인당 GDP를 비교했는데 2000년에 독일 32위, 프랑스 37위였지만 2021년에는 독일 39위, 프랑스 49위로 하락했다.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5년에는 미국과 EU의 1인당 GDP 격차가 지금의 일본(3만9880달러)과 에콰도르(5980달러)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양대 축으로 인류사회의 번영을 함께 견인해 온 미국과 유럽이 이렇게 부의 격차가 확대된 원인으로는 첨단기술력의 우위, 자본시장 규모,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지적되고 있다. 첫째로 미국이 다수의 세계 정상급 대학이 배출하는 수많은 인재를 기반으로 하여 첨단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미국은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로 대변되는 거대한 자본시장과 창업 생태계를 토대로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며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 미국이 높은 고용유연성을 유지하며 새로운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탄력적으로 공급하는 노동시장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소 초점은 다르지만 국가경영전략에 유용한 시사점을 주는 또 다른 자료인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세계은행이 공동 발표한 '혁신과 기술을 활용한 한국의 경제개발 성공사례' 보고서를 함께 검토할 가치가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이 혁신과 기술발전을 통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 고소득 국가로 성장했다고 분석하고 개발도상국에 주는 다섯 가지 교훈을 제시했다. 첫째, '장기적 성장기반'으로 한국은 거시경제 안정성 유지, 민간의 제조업 수출 촉진, 인적·물적 자본에 대한 장기간 투자의 중요성을 입증. 둘째, '시장주도 성장 패러다임'으로 금융위기 이후 기업·금융·공공·노동부문을 개혁하고 시장규율을 강화. 셋째, '혁신 및 기술 촉진'으로 한국의 경험은 혁신과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초기투자가 막대한 이익을 준다는 교훈을 제시. 넷째, '교육받고 훈련된 인력양성'으로 과학기술 교육 등 인적자원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고 경제개발정책 등과 연계·조정. 다섯째,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산업화로 창출된 새로운 일자리들이 빈곤감축과 공동번영의 중심적 역할 수행 등이다.

미국·유럽 간 국부 격차 확대와 한국의 경제개발 성공사례는 상이한 경제발전 단계에서의 스토리이지만 둘 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상황과 향후 국가경영 진로에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교훈을 던져준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기술변화의 도전 앞에서 방심하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결코 없다고 생각된다.
한국은 산업 경쟁력이 바닥까지 추락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성장 없이는 분배도 없다.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성장의 요체인 경제·산업에 친화적인 정치이념, 장기전략과 미래투자, 건전한 노사관계를 토대로 창조적 혁신을 지속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문병준 경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