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모글루와 로빈슨의 '좁은 회랑'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이은 두 사람의 또 다른 역작이다. 정치제도와 경제제도의 약탈성이나 포용성에 의해 국가의 쇠퇴나 번영이 결정된다고 보던 시각을 넘어서 '좁은 회랑'은 성공하는 국가와 사회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야기한다. 국가가 과도한 권력을 행사해 리바이어던이 되면 국민의 자유는 제한되고, 반대로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개인의 생명과 재산은 위협받기 마련이다.
지난 70년을 되돌아보면 끝없는 위기와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실용주의와 유연성에 바탕해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그리고 정보기술(IT) 산업으로 끝없는 변신과 창조적 파괴를 해왔다. 이에 더해 토지개혁과 보편교육 등 포용성장의 기반을 마련한 것도 성공요인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이제 명실상부한 고소득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비효율적 국가시스템으로 혁신동력이 둔화되고 있고, 경제와 사회의 이중구조 심화로 부문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어 우리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득권의 지대추구로 교육과 신산업 등 주요 부문의 혁신이 지체되고 있고, 신뢰라는 사회자본은 바닥 수준이며, 정부 부문은 형식주의가 만연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격차는 2.8배에 달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격차도 2배나 된다.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백약이 무효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개발비 투자에도 불구하고 부처 간 칸막이 문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눈을 밖으로 돌려봐도 위협요인이 하나둘이 아니다. 미중 기술패권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체인의 붕괴, IT와 생명공학기술(BT) 등 첨단기술 발전 가속화로 산업지형이 재편되고 있고, 주요국들은 미래 첨단기술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적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기존 이해관계자 간의 대립구조에 매몰되어 높은 갈등 수준과 낮은 수용성으로 혁신역량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 기후변화 위기는 성큼 다가와 있다.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와 주요국 중심의 탄소중립 본격화,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는 도전적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도 정말 큰 도전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높은 노인부양비, 의료 및 복지 수요는 재정부담을 크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학령인구 및 병역자원 감소, 지역소멸 가속화 등 사회 전반의 파급력이 우려되고 있다.
좁은 회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자본 확충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통해 포용적 성장기반을 다져야 한다. 갈등관리와 건전한 공론화 문화를 조성하고, 나눔과 상생의 문화를 확산해 국가를 신뢰하게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청년과 노인이 상생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의료보장 개혁 및 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을 하고 포괄적 안전망을 촘촘히 해야 한다. 그다음 과제는 인재혁신이다.
경제활동인구 확충을 위해 고령인력을 활용하고, 체계적인 외국인력 유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 노벨상에 연연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인재의 생산성 제고에 나서야 한다. 국민이 공감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변해야 한다.
■약력 △60세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서울대 대학원 정책학 석사 △피츠버그대 대학원 정책학 박사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심의관 △한국조폐공사 사외이사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사외이사 △한국정책학회 회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현)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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