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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으로 하나 됐던 2002년 韓日

최상호의 오페라 이야기

'춘향'으로 하나 됐던 2002년 韓日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에는 1차 세계대전 중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쟁을 잠시 멈추는 장면이 나온다. 먼저 영국군이 음악을 연주하자 이를 들은 독일군이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며 노래를 부른다. 이에 다른 나라의 군인들도 합세하며 총을 내려놓고 잠깐의 평화를 즐긴다. 이처럼 음악에는 장벽을 허무는 힘이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폐막식이 열렸던 요코하마에서 월드컵 기념행사 중 하나로 오페라 '춘향'을 공연한 적이 있다. '춘향'은 1948년 재일 한국인들의 위촉을 받은 일본 작곡가 다카키 도루코가 작곡했다. 혼돈의 시기에 일본인 작곡가에게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어 달라고 제안한 것은 지금도 굉장히 파격적인 부분인데, 재일 한국인을 위로하고 서로의 정체성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로 읽혀진다. 실제로 작곡가는 남원을 방문하고 한국 사람들과 소통하며 작품의 배경과 한국의 정서를 몸소 느낀 뒤에 이 작품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해 일본 내 교포사회가 분열되면서 아쉽게도 '춘향'을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가 200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춘향'은 모든 가사가 일본어로 되어있지만, 굉장히 한국적인 오페라다. 국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국적 리듬과 발레에 해당하는 부분을 한국 전통춤으로 풀어냈다. 더불어 2002년 공연 준비 당시에 요코하마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이 작품에 투자하고 합창단과 무용수로 참여해 한국의 정서를 재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원작은 로맨틱 오페라의 정석을 따라 춘향이가 죽게 되는 비극으로 끝맺었으나 특별히 97세 작곡가의 양해를 얻어 춘향과 몽룡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편곡했다. 마지막에 춘향이와 함께 춤을 추며 받은 관객들의 박수에서 국적과 상관없이 관객 모두가 춘향과 몽룡의 사랑 노래에 푹 빠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군인들이 음악을 듣고 총부리를 거뒀던 것처럼 음악이 국경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선사한 것이다.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