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인의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 !
진정한 '내것'은 무엇인가
일러스트=정기현 기자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대상이 있을까요? 자연도 결코 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고, 일생 땀 흘리며 내 것으로 만든 '집'이나 값나가는 재산도 결국 내 것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더욱 가장 가깝다는 남편이나 자식도 '내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바라보거나 터치할 수는 있어도… 그렇지요 서로 은밀히 안고 자식을 낳는 관계라도, 그렇게 태어난 자식도 완벽하게 내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다 아는 일이지요. 그 외 친구나 동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마음도 마찬가지, 팔 수도 살 수도 없지만 줄 수는 있기에 타인에게 온힘을 기울인다면 위로와 힘이 되어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요.
'내 신발' '내 핸드백' 정도로 내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을지 그것도 의문입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시간'은 완벽하게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한달 365일 그 모든 시간은 내 것이라고 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다면 그래요 살아있는 동안 시간만큼은 내 것으로 말할 수 있겠지요. 결코 다른 사람보다 적게 받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시간처럼 공평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사용의 가치는 서로 다릅니다. 각자 사용의 가치에 따라 시간은 그 무게를 다르게 합니다. 그 가치도 다르게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사용하는 대로 줄었다 늘었다 하는 변화무쌍을 가지고 옵니다. 시간은 그 자체 오염과 왜곡이 없습니다. 그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통렬하게 주어진 시간을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바로 활용해 바른 시간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 경우 그런 사람에게는 한 시간을 열 시간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시간의 의미를 짓뭉개며 사용하는 사람은 열 시간을 한 시간으로 줄이고 맙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시간을 어리석게 쓰는 일이야말로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라고요.
물론 시간은 어느 날 딱 멈추는, 더 이상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멎어 버리는 잔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내 것'으로 존재하면서 늘 같은 시간을 분배하지만 이렇게 어느 선을 딱 잘라버리는 잔인성을 그 어떤 과학도 종교도 탓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내가 아는 한 스승님의 별명은 '시간의 조각가'라고 부릅니다. 이제 90세가 넘어 젊은 날의 절반도 하지 못합니다만 20년 전만 해도 눈부신 하루를 보내는 것을 지켜본 적이 많습니다. 그분은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 가벼운 체조를 하시고 새벽 산책을 길지 않게 합니다. 정원 정리를 하시면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신문을 읽고 이웃에 폐가 되지 않는 시간쯤 피아노를 치고 하모니카 불고 그다음 시간이 아침식사 시간입니다. 그 이후의 일이 무궁무진합니다.
점심은 꼭 여러 사람과 합니다. 그 스승님의 가장 좋은 부분은 오후 2시부터 딱 한 시간 노래 부르는 시간이 있습니다. 20년을 지속한 회사 노래반을 운영했습니다.
회사 교육시설을 직접 관리하시고 회사 이미지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기도 하셨습니다. 왠지 그분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시간이란 사용하기에 따라 하루 24시간이 마치 240시간같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시간의 '두께'라고 부릅니다.
가족의 시간, 회사의 시간, 친구들과 후배들을 만나는 사랑의 시간, 개인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시간을 합치면 그 두께는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빈둥빈둥이라는 말이 있지요. 때로는 그런 시간도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의미가 있긴 하겠지만 시간은 나에게 주어졌을 때 의미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야말로 그 사람의 가치를 만들어 갑니다.
사실 완전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중에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야말로 내 것이고 내가 주인인데 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참 많았습니다. 웃고 싶은데 울거나 울고 싶은데 한 번도 내보이지 않고 눈을 감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 마음인데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일은 허다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것이지만 오직 줄 수는 있는 것이어서 미덕이기도 하고 외로움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음은 날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 남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일 때 나를 위로하고 내 힘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아마도 그 순간 '시간'도 날 위한 내 것의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 365일, 가족과 친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와 가치는 크게 달라지겠지요
시간과 마음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인생에서는 가장 소중한 바탕이 되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마음을 먹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의지를 큰맘 먹는다고 하지 않는지요. 가령 나이 들어 내 몸이 아픈데 그 옛날 어머니의 아픔이 생각나는 일입니다. 어머니의 통증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의 통증은 모든 사람이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 젊은 날의 왜곡이 지금은 큰맘 먹고 뉘우치는 마음을 헤아립니다. 시간과 마음은 남을 돌볼 때 나의 위로가 되는 시간과 마음은 결코 낭비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가치를 지니고 있는 바로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시간 살아있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바로 나의 전 재산입니다.
분명 나의 것으로 존재하는 이것의 용도를 고민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가을이 아름답게 익어 갑니다. 산정으로 타오르는 단풍을 바라보는 만큼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 내 마음에게 내 마음이 말합니다. 마음이여! 나의 시간이여!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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