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연금재정 재계산과 연금개혁안 제출은 법으로 5년마다 이루어지도록 강제되어 있다. 2003년 제1차 연금개혁안 제출을 시작으로 5년마다 이루어지고 있으며, 10월 27일 정부는 제5차 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구체적인 보험료 인상률과 소득대체율이 빠져 있어 맹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2007년 국민연금 개혁을 시행한 노무현 정부와 2014년 공무원연금 개혁을 시행한 박근혜 정부는 이후 정권이 교체되는 일을 겪었다. 정치인들은 표를 잃을 수 있는 사안인 연금개혁을 추진하여 정권교체를 당하는 일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정치적 사유로 아무런 개혁조치가 취해지지 못한 상태에서 연금기금 고갈을 2050년대 중반에 맞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큰 경제·사회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잘못된 정치 유인을 극복하고 반드시 연금개혁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4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로,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을 제안한다.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2022년 2월 여야 후보들은 함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연금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연금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정치적 이해득실을 넘어 우리나라의 사회통합과 미래를 위한 연금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로, 정치적 수용성을 위해 근로자 부담분 보험료율은 현행 4.5%를 유지하고 사업주의 부담분을 현행 4.5%에서 8.0%로 인상할 것을 제안한다. 사용주 부담분이 근로자 부담분보다 높은 사례는 여러 유럽 국가에서 관찰된다. 사업주 부담분만의 인상안에 대해 잘 훈련받은 경제학자는 조삼모사에 불과하며, 실질적 측면에서 임금조정을 통해 근로자가 상당부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학적 분석은 타당하나 정치적 시각에서 보면 사용주 부담분만의 인상은 실행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업주의 부담분 인상과 함께 법인의 세부담을 낮춰주는 조치를 패키지 형태로 실시함으로써 기업들을 설득할 수 있다. 기업들의 통합 고용창출 세액공제 항목으로 국민연금 고용주 부담금 인상분의 일정 비율을 포함하여 공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렇게 높아진 고용주의 연금보험료는 확정급여(DB)형이 아니라 확정기여(DC)형으로 별도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고용주 부담분 인상으로 별도 운영되는 연금계좌는 60세 은퇴 후 68세 연금 개시까지의 소득공백기에 소중한 재원이 될 수 있다.
셋째로, 연금소득에 대해 부과되는 소득세 세수를 일반재원의 세수가 아닌 국민연금기금 재원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연금소득세 규모는 현재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나, 연금수급자와 연금지급액이 크게 증가하는 2030년대 이후에는 상당한 규모를 보일 것이다. 연금기금이 고갈되는 경우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음을 고려하여 이를 막기 위해 연금소득세 세수의 기금 편입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 경우 세수결손 부분들은 소득세 누진성 제고, 부가가치세 인상 등을 통해 채워져야 한다.
넷째로, 연금지급액의 자동안정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자동안정화 장치는 기대수명 증가를 반영해 연금지급액을 삭감하는 형태인데, 이러한 형태의 제도 도입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도입 시 과도한 삭감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모수를 적절하게 조정해야 한다.
위에서 제안한 방안들은 선행조치와 안전판 성격을 가지는 조치들로 근로자 부담분 인상 없이는 제도의 장기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제안한 선행조치들을 시행한 후 근로자 부담분 인상을 포함한 연금개혁이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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